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10% 정도 올랐고 금리를 5%포인트 이상 높였다”며 “우리나라는 금리를 3% 올렸는데 미국처럼 0.5%포인트씩 확 내리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우리는 금리를 3% 올렸다”며 “우리도 0.5%포인트 떨어지겠구나, 돈 빌려도 문제 없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부동산 영끌족(과잉대출자)’ 등을 향해 “기준금리 0.5% 시대는 다시 안 돌아온다”며 “‘갭투자’를 하려면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지 고려하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의 발언은 한은이 이번에 금리를 0.25%포인트 낮췄지만 앞으로 금리가 빠른 속도로 내려갈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총재는 이날 금리 인하와 관련해 ‘매파적 인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0월 금통위 이전에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하는 것을 본 데이터가 9월 한 달치뿐이기 때문이다. 지난달의 경우 추석 연휴가 끼어 있었던 데다 통화 당국의 금리 인하 이후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 한은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는 금리 인하 시 상승하지 않겠느냐 이게 큰 걱정”이라며 “수도권 부동산 공급이 어떨지와 공사 비용 문제, 기저의 교육 문제가 복합적으로 관계돼 있어 정책 공조를 통해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이 같은 ‘매파적 인하 기조’로 연내 추가 인하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총재는 다음 달 금통위의 방향성과 관련해 금통위원들의 3개월 전망(포워드 가이던스)을 소개했다.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가운데 5명은 ‘향후 3개월 뒤에도 기준금리 3.25% 유지가 적정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 총재는 “이달 금리가 낮아지면서 나타나는 주택 거래량 변화와 부동산 시장의 기대 심리 등을 살펴봐야 한다”며 “또 미국 대통령 선거의 영향, 중동 사태에 따른 유가 급등 등 공급 충격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다음 달 금통위에서 금리를 내릴 확률은 적으며 내년 상반기에나 0.5%포인트가량 더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둔화와 물가 안정에도 불구하고 주택 시장에 대한 우려로 금리 인하 여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연말까지 인하 폭은 0.25%포인트에 불과하고 내년 상반기에도 0.25%포인트씩 두 차례 정도만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물가 상승률이 (1%대로) 안정세를 보이면 실질금리가 높아지게 돼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 부담을 조정해야만 한다”며 “물가 안정 기조가 정착되고 가계부채도 정부가 원하는 수준에서 통제된다면 내년 말에 기준금리가 2.5% 수준으로 안정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총재 역시 “(향후 인하 속도는) 금융 안정 상황을 보면서 결정하겠다”면서도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은 충분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금융 당국의 강도 높은 가계대출 관리다. 지난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은 6조 2000억 원으로 전달(8조 2000억 원)보다 2조 원 감소했지만 언제든 다시 증가 폭이 커질 수 있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도 내년 추가 금리 인하를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승용차와 의류 등 재화 소비가 줄면서 민간소비는 0.2% 감소했다. 이 총재는 “가계대출 주담대는 2~3개월 전의 주택 거래량에 따라 후행하는 측면이 있어 7~8월 거래량을 기초로 보면 11월 주담대 증가 폭은 더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단기적으로 실수요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등 부작용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실기했다는 지적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8월에 금리를 인하하지 않았는데도 가계대출이 10조 원가량 늘어난 것을 예상했는지 그분들에게 물어봐 달라”며 “기준금리 인하를 실기했는지는 1년 정도 지나서 평가해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한은이 금리 인하 시기를 놓쳤으며 이 때문에 실질적인 인하 효과가 덜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나 내수 수준을 봤을 때 지난번 금통위 때 금리를 내렸어야 한다”며 “한은이 실기를 했다고 판단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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