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상장지수펀드(ETF) 12개를 다음 달 4일 일제히 상장하고 국내외 자본시장 유력 관계자를 한 자리에 모아 이를 대대적으로 알린다. 해당 밸류업 ETF를 선보이기로 한 12개 자산운용사는 촉박한 일정 속에서도 초기 상장 설정 총액을 1조 원 이상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본지 9월 27일자 21면 참조
1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다음 달 4일 밸류업 지수를 거의 그대로 추종하는 패시브 ETF 9종, 편입 종목 비중을 일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액티브 ETF 3종을 상장하기로 했다. 거래소는 이후 같은 날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정부 유력 인사들과 국내외 기관투자가, 금융투자사, 유관기관, 상장회사를 초청해 개최하는 ‘한국자본시장 콘퍼런스’ 행사에서 ETF 상장 사실과 초기 설정액 규모를 부각하기로 했다. 거래소의 한국자본시장 콘퍼런스는 매년 열리는 정기 행사이지만 밸류업 정책 도입 첫 해라는 점을 감안해 올해에는 그 어느 때보다 규모를 키울 방침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행사 참석자들은 밸류업지수와 연계 상장지수상품(ETP) 방향 등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밸류업 ETF는 1사 1상품으로 제한된 만큼 4일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 등 9곳은 패시브만, 다른 3곳은 액티브만 출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특히 운용사 12곳의 12개 ETF 상장 설정 목표액을 총 1조 원 이상으로 잡고 출시 초기부터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소는 ETF와 별도로 증권사들이 밸류업지수를 기초로 출시하는 상장지수증권(ETN)과 지수 선물도 같은 날 상장하기로 했다. 관련 ETN는 삼성증권(016360), 신한투자증권 등이 준비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 상장 날짜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상당수 운용사들은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유동성 공급자(LP)인 증권사들로부터 초기 자금을 1조 원이나 확보하기는 극히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005930)의 실적과 주가가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이 회사를 15%나 담아야 하는 상품에 단기적으로 대규모 유동성을 댈 증권사는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운용사들은 또 최근 2년 간 합산 손익 적자를 보고 밸류업 공시를 한 적이 없음에도 기준과 무관하게 지수에 편입된 SK하이닉스(000660)의 사례도 ETF 초기 자금 조달의 걸림돌로 꼽았다. 거래소가 연내 지수 편입 종목을 재조정하더라도 편·출입 기업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자금을 끌어모으기 쉽지 않게 됐다는 평가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 분위기가 침체된 데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펀드’,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 등 정권 주도의 관제펀드가 제대로 안착한 경우가 없다는 점도 업계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각 운용사들이 몇 달 간 다른 상품 개발은 제쳐두고 밸류업 ETF 준비에 매달린 탓에 유·무형적인 손해가 크다”며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ETF 초기 설정 총액을 5000억 원에 맞추기도 빠듯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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