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파트너스가 14일 종료된 고려아연 공개매수에서 5% 이상의 물량을 확보하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1라운드에서 승기를 잡았다. 양측의 갈등은 앞으로 지분 경쟁과 이사회 장악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표 대결 등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영풍·MBK는 지난달 13일부터 약 한 달간 진행한 고려아연 공개매수에서 5.34%(110만 5163주)의 지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영풍이 3653주, MBK가 출자한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110만 1510주다. 주당 83만 원이며 약 9173억 원이 투입된다.
이로써 기존 33.13%였던 지분이 38.47%로 늘어나게 됐으며 의결권 기준으로는 약 48% 수준에 이르게 됐다. 주총 출석률을 고려하면 MBK가 주총에서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충분한 지분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의결권 기준으로 최 회장 측의 20.3%(한화 등 우호세력 제외)와도 차이를 벌리게 됐다. 특히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소각하면 MBK의 지분율은 더 높아진다.
이는 이날 고려아연 주가가 0.13% 하락한 79만 3000원에 거래를 마치면서 일찌감치 예견됐다. 최 회장 측이 이달 11일 공개매수 가격을 89만 원으로 높이고 최대 매수 물량을 20%(베인캐피털 2.5% 포함)로 확대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지만 주가는 83만 원을 뚫지 못했다. 투자자들이 주가가 83만 원 아래에 머물자 △MBK 공개매수 청약 △장내 매도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청약 등 세 가지로 분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영풍·MBK가 이사 해임 등을 추진할 수 있는 특별 결의 요건(3분의 2)까지는 차이가 있어 향후 지분 다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자사주 매입에 따라 지분율이 변경되는 28일 이후 영풍·MBK가 이사진 추가 선임을 위해 임시 주총을 소집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MBK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한국 자본시장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로 남게 될 것”이라며 “자본시장의 지지 덕분에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 노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실질적인 첫 번째 걸음을 내딛게 됐다”고 밝혔다.
영풍·MBK파트너스가 14일 주당 83만 원의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5.34%(110만 5163주)를 확보하게 됐지만 장 종료 2시간 전만 해도 향방은 알 수 없었다. 이날 오전 주가가 80만 원을 오르내릴 때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시장을 더 봐야 한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특히 오후 1시 12분 주가가 82만 원을 찍는 순간 MBK 측은 ‘공개매수가 힘들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주가가 다시 80만 원 아래로 내려오면서 그때까지 미동이 없던 기관들이 MBK 쪽으로 몰려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자산운용사 지분은 이미 시장에서 정리했고 헤지펀드들이 물량을 쥐고 있었는데 주가가 83만 원을 넘어섰다면 시장에서 팔았겠지만 다시 주가가 하락하면서 공개매수에 응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전날 대비 0.13% 하락한 79만 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82만 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장 막판에 물량이 쏟아지면서 80만 원 아래로 마감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주당 83만 원의 자사주 취득 공개매수를 시작하고 MBK 측이 공개매수가를 75만 원에서 83만 원에서 높인 4일 이후 종가 기준 83만 원을 넘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11일 장중 80만 1000원, 이날 82만 원을 터치한 게 최고점이다.
특히 최 회장이 11일 공개매수가를 89만 원으로 상향하고 매수 물량도 최대 414만 657주(20.0%)로 높인 특단의 조치에도 공개매수 마지막 날 주가는 크게 오르지 못했다. MBK가 약 7%로 잡았던 최소 매수 물량을 없앤 점도 이번 성공의 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지분율이 약 33%인 영풍·MBK 측이 최대 목표 물량인 302만 4881주(14.61%)를 채우지 못했음에도 5.34%를 확보한 만큼 절반 이상의 성공으로 보고 있다. 의결권이 근 5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공개매수 마지막 날 장중 최고가조차 83만 원 아래에서 형성되자 시세차익을 노리는 아비트라지 펀드 일부가 MBK의 공개매수에 청약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MBK 공개매수에 청약한 뒤 청약 결과를 보고 장내 매도와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에 응모하는 전략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에 청약이 몰렸을 때 안분비례에 대한 불안감이 투자자 사이에서 형성된 측면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이슈가 법적·사회적·정치적 이슈로 번지고 있어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증권사 프롭(자기자본 운용) 부서나 헤지펀드들이 매매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의 불확실성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영풍·MBK가 제기한 자사주 취득 공개매수 금지 가처분 신청의 심문 기일은 18일이며 그 결과는 고려아연의 공개매수가 종료되는 23일 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의 공개매수 종료 후 유통 물량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나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펀드 물량도 공개매수 청약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반 주주가 소유한 주식 수가 전체 유통 주식 수의 5% 미만이면 거래소로부터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고 유통 주식 수가 총 발행 주식 대비 1% 미만이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이제부터 23일까지는 고려아연의 시간이다. 다만 자사주는 6개월간 처분할 수 없고 의결권도 없어 공개매수에 많이 참여하는 것이 최 회장 측에 마냥 호재는 아니다. 많은 물량이 청약할수록 차입금을 대다수 소진해야 하는 부담감도 크다.
MBK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 영풍정밀 주가는 5.31% 상승한 3만 750원에 마감해 최 회장이 경영권을 방어해냈다. 영풍·MBK의 영풍정밀 공개매수에는 단 830주(2490만 원)만이 청약에 응했다. 최 회장이 공개매수가를 3만 5000원으로 높이고 매수 물량을 최대 35%(551만 2500주)로 확대한 영향이다. 다만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최 회장 측에 몰리게 돼 안분비례에 따라 일부 투자자 손실이 우려된다.
고려아연 의결권 1.85%를 쥔 영풍정밀은 장형진 고문을 비롯한 장 씨 일가가 지분 21.25%를, 최 회장 측이 지분 35.45%를 보유하고 있다. MBK는 아예 영풍정밀은 포기함으로써 불필요한 비용을 들이지 않게 되는 결과물인 셈이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영풍정밀을 사수했지만 약 2000억 원의 개인 자금이 묶이는 부담을 갖게 됐다.
영풍·MBK파트너스가 14일 마감된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약 5% 이상을 추가 확보하면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초조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최 회장 측이 목표한 공개매수 물량 20%를 달성한다고 가정하면 영풍·MBK는 의결권 기준 지분율이 약 48%에 이른다. MBK 측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끝난 뒤 꾸준히 장내 매입까지 시도하며 지분율 과반 확보에 나서는 한편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 이사회 장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총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영풍·MBK 측 인사는 장형진 영풍 고문 한 명뿐이다. 영풍·MBK는 고려아연 이사회의 이사 인원 제한이 없는 점을 노려 사외이사를 추가로 대거 진입시키는 전략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이사들을 해임하려면 주총 특별 결의로 가능한데 이 정도의 지분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주총 특별 결의는 출석한 주주 주식 수의 3분의 2 이상의 수와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MBK·영풍 연합은 이른 시일 내에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고려아연 이사진 과반을 확보할 것으로 본다”며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추가적으로 장내 매수, 우호 지분 설득 등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영풍·MBK의 지분은 이번 공개매수에서 5.34%를 추가 확보하면서 38.47%로 늘어난다. 기존 15.65%를 보유한 최 회장 측은 23일까지 함께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베인캐피털이 최대 2.5%를 인수한다고 해도 총 지분율이 18.15%에 불과하다. 그간 우군으로 거론돼 왔던 한화와 현대차, LG화학 등이 힘을 합친다 해도 지분율은 약 36.5%(의결권 기준 약 43%)다. 이들이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줘도 영풍·MBK 측에 밀리는 구조다. 이 때문에 고려아연 지분 7.83%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향후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공개매수를 통해 자사주를 매입해도 의결권이 없다는 점도 불리하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 최대 수량으로 17.5%를 제시한 상태인데 역설적이게도 자사주 공개매수가 더 많아질수록 영풍·MBK의 지분율이 과반에 가까워진다는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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