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퇴직연금을 유치해 운용·관리하도록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부가 반대하는 입장으로 정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퇴직연금 운용을 위해서는 별도 조직이 필요한 데다 사회적 리스크도 크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연금의 시장 진출을 우려했던 증권·보험·은행 등 금융업권은 한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22일 관가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까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검토한 결과 국민연금에 퇴직연금 사업자 지위를 부여해주는 법안에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정부 관계자는 “사회적 리스크가 커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리됐다”고 밝혔다. 더불어 탄핵 정국으로 인해 야당이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사 중인 해당 법안 처리를 뒤로 미룰 가능성이 높은 측면도 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퇴직연금 시장에 ‘메기 효과’를 불러오고 국민연금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다는 취지로 지난 8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국민연금에 100인 초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사업자 지위를 부여한다는 게 골자다.
단, 퇴직연금 기금은 국민연금과 별도 계정으로 운용한다. 기존 포트폴리오의 신규 자금을 추가 배분하는 방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국민연금 내 퇴직연금기금운용본부를 신설해야 하는 데 정부도 별도의 조직과 인력, 인프라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382조40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최근 5년간 연 환산 퇴직연금 수익률은 2.35%에 그친다. 반면 국민연금은 2017년~2021년 5년간 연평균 7.63% 수익률을 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지금은 계약형 퇴직연금 위주여서 원리금 보장형에 몰리다 보니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이지 국민연금이 운용한다고 5%로 높아진다는 건 ‘과도한 단순화’라고 반박한다. 기금 속성에 부합하는 자산배분과 그에 따른 투자 포트폴리오의 장기적 운영 결과가 운용수익률이라는 얘기다.
최근 금융투자협회 주관으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인 월례 조찬에서도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시장 진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자본시장연구원의 ‘퇴직연금제도 성장과 자본시장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과 민간 금융기관이 경쟁하는 시장 상황은 메기 효과 보다는 공공의 민간 구축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에 걸친 노후자산 축적에 수반되는 위험의 분산은 연금제도와 기금운용 모두 중요하다”며 “현재 국민연금(1층), 퇴직연금(2층), 개인연금(3층)으로 이뤄진 다층연금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퇴직연금은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구분되며, 우리나라는 현재 계약형 퇴직연금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회사 또는 근로자 본인)가 직접 퇴직연금 사업자(금융회사)와 계약하는 방식이다. 반면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노·사·외부 전문가 3자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를 만들어 연금을 관리·운용하는 체계다.
정치권 관계자는 "법안에는 국민연금의 기금화 뿐 아니라 금융기관도 기금화를 할 수 있도록 했다"며 "소관이 넘어가는 부처 칸막이 문제와 국민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는데 앞으로 대선 공약 등에 담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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