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다음 한국인 국적의 노벨상 수상자가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노벨 평화상에 이어 문학상까지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이른바 ‘문과 출신’이 딸 수 있는 상은 경제학상만 남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학계에서는 경제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지만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연구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경제학계 등에 따르면 그동안 노벨경제학상은 미국인 남성, 시카고대, 유대인이 독식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수상 법칙이 존재했다. 실제 1969년 노벨경제학상이 제정된 이후 경제학상을 받은 수상자 중 미국 국적자는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역대 수상자 중 시카고대 졸업자가 3분의 1에 달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수상자 제임스 로빈슨도 시카고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카고학파는 시장 원리에 따른 경제 운용을 중시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970년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며 주류 학파로 부상했다. 이처럼 주류 학파인 시카고학파의 벽은 견고하다. 흑인, 아시아계, 여성에게 유독 기회가 적었던 노벨경제학상을 한국인이 수상하기 위해서는 ‘미국, 시카고, 유대인’의 견고한 벽을 넘어서야 한다.
국내 경제학계에서는 당분간 한국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학상을 받을 정도로 괄목한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국내 논문 등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전공인 한 대학원생은 “노벨 경제학상은 모든 경제학도의 꿈이라서, 한강 작가처럼 깜짝 수상을 하고 싶다”면서도 “대학원생 절대 다수가 단기 성과가 나와야 조교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 수준에 이르는 깊이 있는 학문적 수준을 달성하는 것이 후순위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단기 연구 성과 중심의 연구 풍토가 만연한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나올 만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경제학자와 대학원생의 공통된 견해였다.
다만 국내에서도 뛰어난 경제학자들이 많고 성과도 많이 올라온 만큼 한국인 중에서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배출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왔다.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계속 우리 학문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경제학상 수상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면서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수학을 하고 제자들을 교육시키고 양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연구 성과를 내는 선순환적 구조들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장기적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질적 위주의 연구 지원 풍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나올 시기가 되었다는 전망도 나왔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교수들 중에 역량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면서 “이번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주제도 한국이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국가의 번영) 등 향후 이 분야에 대해 연구를 더 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양 교수는 “국내 연구 환경이 한 주제를 가지고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면서 “어떤 연구 주제에 대해 결과를 좀 선도적으로 리드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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