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 장기화로 빚을 못 갚는 자영업자들이 늘면서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당국은 은행권에 당분간 중소기업대출 연체에 따른 신용 손실 확대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전달보다 0.06%포인트 오른 0.53%를 기록했다. 2018년 11월(0.60%) 이후 69개월 만에 최고치다. 8월에 새로 발생한 연체액이 3조 원으로 전월 대비 3000억 원 증가한 데 반해 연체 채권 정리 규모는 1조 4000억 원으로 1000억 원 감소한 영향이다. 신규연체율은 0.13%로 전월(0.12%) 대비 0.01%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중소기업대출의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대기업대출 연체율의 경우 전월 말과 비슷한 0.05%를 기록한 데 반해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한 달 만에 0.11%포인트나 상승하면서 0.78%를 기록했다. 구체적으로는 중소법인대출 연체율이 0.84%, 개인사업자대출은 0.70%로 각각 0.13%포인트, 0.09%포인트씩 뛰었다.
문제는 중소기업 연체율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8월 말 기준으로 올해 중소기업대출 연체율(0.78%)은 2016년 8월(0.93%) 이후 가장 높다. 코로나19 직전 3개년 연체율의 경우 △2017년 0.73% △2018년 0.66% △2019년 0.64% 등으로 올해보다 낮았다.
통상 자영업자를 의미하는 개인사업자대출만 떼어 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 8월 말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0.70%로 2014년 8월(0.79%)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다. 코로나19 이전 △2017년 0.40% △2018년 0.37% △2019년 0.40%와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와 같은 특별한 외부 요인이 없었던 시기보다 연체율이 높다는 것은 자영업자들의 현재 사정이 그만큼 나쁘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기업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경기 민감 업종을 중심으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며 “내수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 당시 이뤄졌던 이자·원금 상환 유예 등 각종 금융 지원 정책까지 순차적으로 종료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당분간 자영업자 등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 인하 효과가 본격화해 실물경제에 반영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내수 경기가 당장 회복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당분간 신용 손실 확대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금감원은 “전체 대출 연체율의 경우 코로나19 이전 장기 평균(2010~2019년 0.78%)에 비해 여전히 낮고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도 개선돼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면서도 “경기에 민감한 중소법인·개인사업자 중심으로 신규 연체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당분간 신용 손실 확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적극적인 연체 채권 정리, 충분한 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통해 자산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우려 차주에 대한 채무 조정을 활성화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