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서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국내 증시가 당분간 예측 불허의 변동성 장세를 펼칠 것으로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급부상, 반도체 업황 악화 등이 국내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금리 인하 국면에서 혜택을 받을 종목과 글로벌 무역 분쟁 속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낼 업종에 투자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22일 서울경제신문이 5대 증권사(삼성·미래에셋·NH·한국·KB) 리서치센터장을 대상으로 증시 긴급 진단을 의뢰한 결과 당분간 국내 증시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요 원인으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상, 정보기술(IT) 산업 경쟁력 약화 등을 꼽았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2%까지 올라 체력이 약한 국가들은 고금리에 대한 단기적인 부담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달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분류 기준 한국의 IT 업종은 주당순이익(EPS)이 6.5% 감소했다”면서 “같은 기간 미국과 대만이 1.5%, 4.4%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고 전했다.
센터장들은 원·달러 환율의 상승,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에 미칠 긍정적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미국 국채금리가 오르면 달러 가치도 덩달아 상승해 국내 기업들은 수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해진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대선 영향으로 이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트레이드’로 ‘환율 상승→수출 기업 수혜’라는 투자 논리가 작용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 센터장 역시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고관세 정책으로 2019년 우리나라 수출이 3년 만에 역성장했다”며 “미국의 관세장벽으로 대미 수출뿐만 아니라 미중 갈등으로 대중 수출에도 타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달러가 이미 많이 올라 외국인투자가 입장에서 환차손 우려가 커졌고 해외 수요가 둔화돼 매출 증대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수입 원재료 비용 부담도 커졌다”고 진단했다.
센터장들은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반도체와 자동차 업종에서의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에 속한 기업들의 실적은 견조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 센터장은 “금리 인하 초기에는 경기 모멘텀이 강하지 않아 수익성 방어에 집중한 포트폴리오를 짤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윤 센터장은 “주식 비중 확대가 유효하나 여전히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 기업의 이익의 질을 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센터장들은 전력 기기, 방산, 헬스케어를 주목할 만한 업종으로 지목했다. 다만 대선 전까지 공격적 매수는 신중할 것을 조언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만약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2차전지도 반기적인 반등을 기대해볼 수 있겠으나 미국의 탈중국 전략으로 상승 폭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오 센터장은 “대외 악재들이 이미 국내 증시에 선반영돼 주가가 싸졌지만 그럼에도 대선 전까지는 공격적으로 저가 매수를 할 필요는 없다”며 “트럼프나 해리스나 모두 약달러를 주장하고 있어 약달러에 대한 대안으로 금과 비트코인을 주목해볼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김 센터장은 “코스피가 저항선을 뚫기 위해서는 결국 반도체와 IT 업종에 대한 펀더멘털(기초 체력) 우려가 해소돼야 할 것”이라며 “4분기 중반쯤부터는 금리 인하 효과가 확인되고 대선 불확실성도 해소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여 이에 따른 수혜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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