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정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고 대기업에 적용되는 산업용(을) 전기요금만 대폭 인상하면서 정부가 표를 의식해 대기업에만 부담을 전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장 질서에 기반한 요금 체계를 왜곡했다는 지적과 함께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계의 경영 활동이 상당 부분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부와 한전에 따르면 24일부터 대용량 고객인 산업용(을) 전기요금이 평균 10.2% 인상된다. 산업용(을) 전기를 이용하는 고객은 전체 이용 고객의 0.1% 약 4만 1000호로 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대상이다. 중소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갑) 전기요금을 5.2%만 인상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전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대기업의 연간 부담액이 호당 1.1억원, 전체 기준으로 연간 4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큰 폭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하면서 전력사용량이 많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철강·정유 기업들의 전기료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당장 업계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국내 산업계는 고물가·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에 놓였다”며 “전기요금 차등 인상으로 경영 활동 위축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소비자에 대한 가격 신호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원가주의에 기반한 전기요금 결정 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경협 조사에 따르면 이번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24시간 전기를 사용하는 전자·통신 업종에서는 전력비용 부담이 연간 최소 6248억원의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경협 관계자는 “요즘 대기업 중 반도체 업황이 어렵고 실적도 안 좋은데 전기료까지 추가로 내야 하니 상당히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기업 중 전력사용량이 가장 많은 삼성전자의 타격이 매우 크다. 한국전력과 삼성전자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삼성전자 사업장의 전력사용량은 2만 2409GWh이며 이 가운데 90%가량이 반도체(DS) 부문에서 사용됐다. 반도체 공정 특성상 온습도 제어, 공기 순환 등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기 사용량이 많은 반도체의 특성으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기요금으로만 3조 2600여억 원을 냈다. 이번 전기요금 10.2% 인상으로 연간 3500억 원의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한다.
HBM 세계 1위인 SK하이닉스의 전력 사용량도 삼성전자의 50%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에 따라 연간 최소 1700억대, 많게는 2000억 원대 추가 요금 부담이 예상된다. 연간 7000억 원의 전기료를 납부하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다수의 기업도 전기요금 인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업황이 좋지도 않은데 (정부가) 전기료 지원을 해줘도 부족한데 2년째 산업용 가격만 올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철강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전기료가 오를수록 중국산 철강 제품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철강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기요금이 1㎾h당 1원 인상되면 연간 원가 부담은 200억 원 증가한다고 추산한다. 이번에 대기업 기준으로 1㎾h 16.9원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약 3400억 원 추가로 늘어나게 된다. 석유화학, 정유업종 기업들 또한 비상이 걸렸다. 정유업종 관계자는 “이번 요금 인상으로 제조 원가도 같이 올라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상승폭이 너무 크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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