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5일(현지 시간)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피벗(금리 인하)하면 환율은 좀 안정된 방향으로 가겠구나 했는데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나고 2주 동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예상과 성장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며 “미국이 금리를 금방 안 내릴 거라는 견해가 많이 커지면서 달러가 굉장히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굉장히’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환율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 총재들 사이에서도 연준이 11월에 금리를 0.25%포인트 내려도 강달러 추세가 쉽게 전환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며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미 행정부의 재정 적자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데 금리는 빠르게 내리지 못하는 게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원화 약세 요인이 많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따른 확전 우려와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수출 성장세 둔화도 변수다. 이 같은 사안들이 고율관세를 예고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과 맞물리면 원·달러 환율은 1450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다면 최악의 경우 상단 기준 환율이 1450원을 넘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도 “1400원에 기술적 저항이 있지만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가 지금의 104에서 106까지 상승할 수 있어 단기적으로 환율이 1410~1420원까지 갈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 역시 현재로서는 성장보다 환율 리스크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달 들어 25일까지 원화 가치 하락률은 -5.21%로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크다. 구체적으로 일본 엔화(-4.92%), 호주 달러(-4.35%), 영국 파운드(-3.07%), 유로(-2.87%), 중국 위안(-1.52%) 등이다. 이 총재는 “4분기(성장률)가 정말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올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 2%보다는 반드시 높을 것”이라며 “성장률이 갑자기 망가져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분기도 봐야 하지만 (3분기 성장률을 반영하면) 올해 2.4% 성장으로 예상했던 게 2.3%나 2.2% 정도 될 것”이라며 “금리 인하 실기론을 제기하지만 통화정책을 할 때는 경기 외에도 금융 안정과 환율 변동 등 고려하는 요인이 많다”고 덧붙였다.
앞서 금리를 내렸으면 원·달러 환율이 지금보다 더 올랐을 수 있다는 게 이 총재의 생각이다. 그는 예상보다 저조한 3분기 성장률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며 “거시 지표로 보면 고용이 나쁜 상황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빠르게 가라앉는 경기가 관건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성장률은 하방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향후 경기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본다”며 “내수 부문에서 건설 부문이 약하다”고 짚었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2분기 성장률이 -0.2%를 기록했고 3분기에는 제자리걸음(0.1%)하는 데 그쳤다.
최 경제부총리는 환율에 대해서는 이틀 연속 “쏠림 현상이 있다면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시장 개입에 나섰다. 정부 부처 내에서는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어느 정도의 원화 약세는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흘러나온다. 환율도 중요하지만 적정 선에서 경기와 무게중심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 대선 이후에는 되레 환율이 안정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불안정성이 해소되면서 환율은 안정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 대선 결과가 다음 달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에 1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대선은 다음 달 5일(현지 시간),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다음 달 7~8일로 예정돼 있다. 11월 금통위는 다음 달 27~28일 개최된다. 이 총재는 “다음 달 금통위에서는 수출 성장률 둔화가 내년도 경제성장률에 미칠 영향, 현재 진행 중인 거시 건전성 정책이 금융 안정에 미치는 효과, 미국 대선 후 달러 강세의 지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데이터를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