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학기술원(GIST) 초강력레이저과학연구단은 지난해 말 운영이 종료됐음에도 지금까지 후속 연구단을 출범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고 수준의 단장 영입을 위해, 유럽 등지의 해외 석학을 유치하기 위해 적임자를 물색했지만 연구단을 이끌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해외 석학을 복수 후보로 올려 협상을 이어왔지만 조건과 처우 문제로 끝내 무산됐다. GIST는 노벨물리학상 수상 연구 주제였던 100경(京)분의 1초 순간의 전자 움직임을 관찰하는 아토초 물리학을 포함해 다양한 첨단 레이저 과학 인프라를 자랑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4PW(페타와트)의 순간 출력을 내는 국내 유일의 초강력 레이저 설비도 갖췄지만 이를 가장 많이 활용해 연구 성과를 내왔던 연구단이 1년 가까이 꾸려지지 못하면서 당분간 연구 공백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다른 연구기관 사정도 비슷한 형편이다. 국제 공동 연구를 위해서라도 해외 석학을 영입하고 싶지만 한정된 예산 때문에 연봉과 처우를 맞추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특히 서울에 집중된 국내 연구 인프라도 한계로 지적된다. 정부출연연구기관과 4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 대부분 지역에 위치해 국내 연구진도 근무를 꺼리는 실정이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4대 과기원에 이어 올해 1월 출연연이 공공기관에서 해제되면서 해외 인재 영입의 자율성이 커졌지만 정작 미국 등 선진국과 연봉 등 처우 수준을 맞추기 힘들다”면서 “해외 인재 영입 경쟁에서 주요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현실은 최고 수준의 인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 교수(E-1)와 연구직(E-3), 기술지도(E-4), 전문직업(E-5) 등의 전문인력 영입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취업 자격 체류 외국인 가운데 전문인력은 총 6241명이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은 올 9월 기준으로 5908명으로 333명이 감소했다. 1년 전인 지난해 9월과 비교하면 549명이 줄었다. 특히 연구직이 1년 새 461명이 줄어 전문지식을 응용해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성과를 높여줄 해외 우수 인력의 국내 이탈 현상이 심상치 않은 수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정부도 국내 과학기술 인재 양성 못지않게 해외 전문·숙련인력 영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달 발표한 ‘과학기술 인재 성장·발전 전략’에 포함된 해외 우수 인재 유치 및 정주·정착 지원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우선 과학영재고 및 이공계 학부·대학원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확대하는 한편 경력개발·취업 지원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경제협력 수요가 높은 국가의 장학생 선발 규모를 늘리고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 학생의 가족 영주권 부여 조건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외국인 연구직(E-3)의 이탈이 커지고 있는 것을 고려해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해 국내 정착의 어려움을 해소할 방침이다. 그동안 외국인 인재가 석사 학위에 그칠 경우 3년 이상의 경력을 가져야 E-3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우수 대학 졸업 및 우수 논문 저자일 경우 비자 발급이 가능해졌다. 특히 그동안 효과에 의문이 제기됐던 ‘사이언스 카드’ 혜택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과학기술 분야 우수 인재로 검증된 외국인 모두에게 사이언스 카드를 발급하는 동시에 그동안 과학자의 부모를 함께 초청할 경우 발목을 잡았던 국민총소득(GNI) 기준도 2배에서 1배로 낮추기로 했다. 과학자의 배우자가 모든 직종에 취업할 수 있도록 할 경우 과학기술 인재의 안정적인 정주가 가능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정착 초기 주거와 금융, 의료, 자녀 교육기관 입학 등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정착 초기 컨시어지 서비스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정도로는 주요국과 경쟁하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도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중국이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제시하면서 우수 인재를 데려가는 등 전 세계적인 우수 인재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정부도 특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싱가포르가 올해부터 도입한 장기 취업 비자 ‘원패스’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싱가포르 원패스는 월 소득이 3만 싱가포르달러(약 3000만 원) 이상이거나 과학기술, 연구 및 학문 분야 등에 뛰어난 업적을 쌓은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5년짜리 취업 비자다. 비자 유효기간 동안에는 회사에 다니지 않더라도 합법적으로 체류가 가능하고 부양가족도 구직활동이 가능하다. 취업 전 연구자 신분이어도 이 같은 혜택이 적용되는 ‘한국형 천재비자’ 도입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과기 인재 성장·발전 전략을 기반으로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추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첨단산업 분야의 비자 발급 조건에 정규직 경력만 인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진달래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실태조사를 보면 3년 미만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68%에 달하는 만큼 경력 요건에 일정 기간 이상의 계약직도 포함해야 한다”며 “계약직이 많은 과학기술 분야의 취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포함한 과학기술특성화대학으로만 제한하고 있는 것을 일반 대학으로 확대하고 복수국적 취득 요건을 간소화하는 것도 해외 인재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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