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세수 재추계 결과를 보고하면서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과 관련해 20% 범위에서 기금 운용 계획을 변경하는 것을 현재 단계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29조 6000억 원 규모의 세수 결손을 메꾸는 과정에서 외평기금은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 같은 기재부의 입장은 한 달 새 바뀌었다. 최대 6조 원의 외평기금을 써서 세수 결손에 대응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지적이 쏟아졌다.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결과적으로 말을 바꾼 것이다. 외환시장 대응 여력을 훼손하지 않는 금액이 몇 조냐”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세수 펑크 대응 과정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외평기금을 동원하기로 한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20조 원을 동원해 56조 원가량의 세수 펑크를 메웠을 때도 ‘외환 방파제를 허물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또한 올 8월 2023년도 정부 회계를 결산하며 “국세 수입 결손을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외평기금의 원화 자금을 활용하는 것은 본래 설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 선거나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을 고려하면 외평기금을 세수를 메꾸는 데 동원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도 안 좋은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짚었다.
청약통장 납입액을 재원으로 삼는 주택도시기금에서 최대 3조 원을 충당하기로 한 것 역시 논란이 예상된다. 주택도시기금은 주택사업자와 개인에게 분양 주택 건설 자금과 주택 구입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목적이 뚜렷한 주택기금에서 돈을 가져다 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얘기도 많다. 기재부 관계자는 “다음 달부터 공공분양 월 납입 인정액을 기존 1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올리기로 한 데다 청약통장 금리를 0.3%포인트 인상하기로 해 여유 재원은 충분하다”고 해명했다.
세수 결손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7조~9조 원 수준의 불용을 내겠다고 밝힌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기재부는 “지난해(7조 8000억 원)와 비슷한 수준의 통상적인 불용을 전망한다”며 “민생·지역 경제와 경제 활력 지원과 관련한 사업은 최대한 차질 없이 집행되도록 지속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정도의 불용액만 해도 이미 상당히 큰 액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지난해 불용액(교부세·교부금 조정 및 내부거래 제외)은 10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기 대비)이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0.2%와 0.1%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가운데 9조 원 수준의 불용액이 발생한다는 것은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 측면에서 타격이 크다.
정부가 이처럼 여유 기금과 불용을 중심으로 세수 결손 대응에 나선 것은 국가부채를 늘리지 않기 위해서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맞다는 야당의 지적에 최 부총리는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정부 내 가용 재원을 활용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이 나쁘다는 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날 정부는 각 지자체의 비상 통장 개념인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재정안정화 계정 잔액이 8월 말 기준 7조 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교부세·교부금이 23조 원 가까이 삭감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총잔액은 크게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대응책으로 국가채무가 증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기금에서 14조~16조 원의 여유 재원을 조달할 경우 관리재정수지가 기존 전망보다 10조 원 이상 늘어날 수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근본적인 구조 개편 없이는 세수 결손으로 재정 전반이 흔들리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초과 세수가 들어올 때는 그 잉여금을 별도 기금에 넣고 이후 세수 결손 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경직적인 교부세·교부금 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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