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채권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투자자들이 국내 채권 시장에서도 금리 상승에 베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재정지출 확대, 보호 무역주의,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전방위적으로 금리와 달러 가치를 들어올리고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미국의 국채 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한 지난달 30일부터 전날까지 10년물 국채 선물 시장에서 총 4조 2227억 원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3년물 국채 선물 시장에서도 3조 9170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국채 선물 시장에서 매도 포지션을 취했다는 것은 국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데 베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채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매도 포지션은 국채 선물 가격이 하락할 때 수익이 생기는 구조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국채 선물 시장에서 매도 우위를 보인 것은 미국채 금리가 급등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채 금리는 우리나라 채권 금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동인”이라며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면 한국의 국채 금리도 여지 없이 오르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내리면 국채금리도 따라서 내리거나 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향후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금리도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우려한다.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모두 재정적자를 확대하는 공약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적자가 늘면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해 이를 감당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공화당이 의회 선거에서도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경우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최대 43bp(1bp=0.0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은 트럼프 후보의 공약이 향후 10년 동안 미국의 재정적자를 7조 5000억 달러(약 1경 385조 원) 늘릴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의 공약은 같은 기간 미국의 재정적자를 3조 5000억 달러(4846조 원) 증가시킬 것으로 봤다. 트럼프 후보는 법인세 감면, 해리스 후보는 저소득층 감세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달러 강세도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8일 기준 104.32로 전월 대비 3.8% 상승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통화 약세 압력이 유난히 심한 상황이라고 경고한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식 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 하반기 경기 부진, 수출 의존이 높은 경제 구조 등으로 유럽·일본·중국 등 주요국 대비 환율 변동이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관세를 인상하면 수입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물가상승률 상승, 금리 상승, 달러 강세로 연결된다”며 “특히 미국이 관세를 높이면 글로벌 무역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데,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 특성상 무역량 감소는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곤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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