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경북 구미시 역전로.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도착한 구미역 앞에 길이 475m에 달하는 대형 ‘라면 레스토랑’이 직선으로 펼쳐졌다. 이곳에서 열린 ‘구미라면축제’는 평일인데도 인근 주민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종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도 방문객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구미 송정동에 사는 50대 김 모 씨는 “서울과 달리 우리 지역은 볼거리가 많지 않았는데 모처럼 공연도 하고 식사도 특이하다고 해서 와 봤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외식업자들은 각자 부스를 꾸리고 라면을 활용한 음식을 조리해 내놨다. 또띠아에 고명으로 면발을 올린 ‘라면 타코’ 같은 이색 조합이 탄생하는가 하면 요리에 풍미를 입히는 ‘불 쇼’도 곳곳에서 한창이었다. 이날 부스를 낸 한 요리사는 “작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오는 것 같다”며 “반응을 본 후 우리 식당에서도 라면을 활용한 요리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인근 농심 구미공장에서 직송된 ‘갓 튀긴 라면’을 구매하러 긴 줄이 형성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날 농심이 신라면(3600원)과 안성탕면(3400원) 5개 묶음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자 주민들은 양 손 가득 이를 실었다. 50명이 넘는 인파가 택배로 각자 가정에 라면을 실어 보내려고 길게 줄을 늘어섰다. 농심 관계자는 “사실상 대형마트 공급가 정도로 마진 없이 행사 당일 제품을 제공했다”며 “소비자들에게는 갓 튀긴 라면 맛이 어떻게 다를까 하는 호기심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날부터 3일 간 열리는 구미라면축제는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구미시가 국내 최대 라면 생산기지인 농심 공장을 품고 있다는 데서 착안했다. 1990년 설립된 구미공장은 국내 신라면 생산량의 약 75% 이상을 책임지는 농심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분당 600개 속도로 찍혀 나오는 신라면에다 스낵까지 합하면 총 42종의 제품이 여기서 생산된다. 자동화와 고속 생산 뿐 아니라 △위생 절차 △면과 스프의 모양 △포장 불량 △수량 부족 △소비기한 표시 검사 5개 공정에는 인공지능(AI) 기술도 도입돼있다. 농심은 올해 구미공장에서 작년의 7700억원 분량보다도 많은 8300억원 규모 생산을 예상하고 있다. 김상훈 농심 구미공장장은 “이곳에서 하루 665만 개 라면을 생산할 수 있다”면서 “500만 대구·경북 시민에게 한 끼를 제공하고도 남을 정도”라고 전했다.
인구가 줄어 가는 전통적 산업 도시면서도 마땅한 관광 인프라가 없던 구미시에게 지역 최대 식품업체인 농심이 참여한 이 축제는 가장 강력한 홍보 매체로 작용하고 있다. 농심은 축제를 위해 포토존과 무인로봇 푸드트럭을 조성하고 라면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꾸렸다. 윤성진 라면축제 기획단장은 “기존의 낙후된 산단이 아닌, 식품과 산업을 결합한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면서 “지역이 갖게 되는 브랜드 효과는 행사 기간 발생하는 매출 이상으로 크다”고 강조했다.
시청 관계자들은 지난해부터 라면축제 개최 장소를 구미역 앞으로 옮긴 선택을 ‘신의 한 수’로 꼽는다. 낙동강변에서 열었던 첫 해 행사와 달리 구미 구도심 상권을 살릴 수 있어서다. 실제 10만 명에 달한 작년 축제 기간 방문객들 중 외지인 비중은 30%에 달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쇠퇴하고 공동화 현상도 나타나는 구도심 속에서 축제를 열어 인근 전통시장이 부활하는 계기를 만들고 상권을 살리려는 취지”라면서 “행사가 잘 되면 국제적인 축제로 발전시켜보려는 꿈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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