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행정부와 사법부는 물론 입법부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1기 때보다 훨씬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유세 과정에서 내놓은 정책들을 실행하기보다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을 견제할 장치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세계 각국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 시각 7일 오후 3시 현재 295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과반인 270명을 훌쩍 넘겼다. 네바다와 아리조나에서도 승리가 확실시돼 총 31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대선과는 달리 총득표율에서도 50.9%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47.6%)을 앞서 명실공히 국민 과반이 뽑은 대통령이 됐다. 이러한 기세를 몰아 트럼프 당선인은 1기 때보다 더 선명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백악관과 내각도 선거 기간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한 ‘예스맨’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주목할 점은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와 균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상원은 총 100석 중 공화당이 52석을 차지해 과반을 확보했고 하원도 이날까지 435명 중 공화당이 206석, 민주당이 191석으로 공화당이 과반(218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개표 중인 의석수는 총 38석이다. 사법부를 상징하는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으로 꾸려졌다.
‘마가’의 복귀에 전 세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루이스 데긴도스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는 6일(현지 시간)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상대방이 보복할 것이고 이는 인플레이션과 (보복) 관세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NG도 이날 “새 무역 전쟁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이 본격적인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며 “이미 어려운 독일 경제는 미국의 유럽 자동차에 대한 관세로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려에 달러·유로 환율은 6일 장중 1.07달러 아래로 떨어지며(유로 약세) 8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60%의 관세를 예고한 중국은 일본식 디플레이션 우려가 짙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 7월 UBS는 관세 폭탄이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을 2.5%포인트 갉아먹어 반 토막 낼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날 맥쿼리그룹도 성장률이 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은 동맹국과 협력하며 대중 압박을 펴던 조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직접 협상을 시도하는 등 고립주의를 탈피하기 위한 전략을 펼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 중국은 양국 협력을 강조하며 먼저 손을 내밀고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당선인에게 보낸 축전에서 “역사는 우리에게 중미가 ‘협력하면 모두에게 이롭고 싸우면 모두가 다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중미 관계는 양국의 공동 이익과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4년 전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때 18일 만에 축전을 보낸 것과 비교해 매우 발 빠른 행보다.
트럼프 1기 때 ‘밀월 관계’를 구축했던 일본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멕시코산 자동차에 10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도요타 등은 멕시코 공장에서 연간 수십만 대의 차량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관세가 부과되면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해야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일본 등을 겨냥해 “동맹국은 적대국보다 더 심한 형태로 우리를 이용해왔다”며 미국이 안고 있는 무역적자에 강한 불만을 표시해왔다는 점에서 적자 삭감을 위해 무역 협상을 요구해올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트럼프 1기에서 일본에 주일미군 주둔 경비 부담을 현재의 3배 이상 늘리라고 요구했던 전력이 있는 만큼 새 행정부에서도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도 성사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산업화의 상징인 US스틸을 일본 기업이 인수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선거 기간 내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당국의 심사도 12월 말로 연기된 상태다. 시장에서는 2조 엔(약 18조 원) 규모의 이번 거래가 트럼프 당선인의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US스틸은 최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피츠버그)에 공장을 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미국 상무부와 반도체 보조금·대출 협상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TSMC와 글로벌파운드리가 미국 정부와 ‘구속력 있는’ 계약 협상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회의적인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하기 전에 서두르는 것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는 “올해 초에 잠정적으로 합의했던 바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 임기가 내년 1월 끝나기 전에 TSMC와 글로벌파운드리가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해 협상을 마쳤다”고 밝혔다.
한편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2기에 대한 이러한 우려가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의 과격한 관세 위협은 일종의 협상 카드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매력적인 거래(deal) 조건을 내놓으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폴 시어드 전 S&P글로벌 부회장은 “트럼프 당선인은 극단적인 관세를 협박용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 실제로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낮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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