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으로 ‘미국 우선주의’가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면서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미국 주식형 상품이 사상 처음으로 하루 거래액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나타났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트럼프 정부 2기 확정 이후 국내 증시는 맥을 못 추고 미국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자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이탈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일 미래에셋자산운용 ‘TIGER 미국 S&P500 ETF’의 거래 대금이 총 4553억 원을 기록해 국내 상장 ETF 가운데 1위를 나타냈다. 금리형이나 레버리지형(기초자산의 수익률 2배 추종)이 아닌 일반 미국 주식형 상품이 하루 거래 대금 1위를 기록한 것은 한국 증시에 ETF가 처음 등장한 2002년 이후 22년 만에 처음이다. 7일 TIGER 미국 S&P500 ETF의 거래 대금 규모는 이 상품 기준으로도 2020년 상장 이후 최대 수준이었다. 이 ETF의 거래 대금은 이날 1468억 원으로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전체 시장 6위에 올라 상위권을 지켰다.
업계에서는 기초자산 지수를 90% 이상 그대로 추종하는 일반 주식형 패시브 ETF가 거래 대금 1위에 등극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ETF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통상 ETF 시장에서는 대기 자금을 일시적으로 담는 금리형이나 단기 매매가 활발한 레버리지 상품의 거래 대금이 가장 많은 편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트럼프 당선인이 자국 우선주의 기조를 내세우자 국내 투자자들이 현지 시장 투자 상품에 뭉칫돈을 투입한 결과로 분석했다. 실제 개인은 7일에만 TIGER 미국 S&P500 ETF를 416억 원어치 이상 매수했다. 이 ETF의 순자산은 6일 국내 상장 해외주식형 가운데 처음으로 5조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는 아시아 상장 S&P500지수 추종 ETF 중에서도 최대 규모다.
전문가들은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첫날부터 해외투자 ETF에 거래가 몰리자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이후 개인들의 한국 증시 탈출 추세가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 등 각종 규제 조치를 예고하면서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상장 기업들이 대미 수출 활로를 뚫기가 만만치 않아졌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이미 1배 밑으로 추락해 시가총액이 기업 청산 가치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도달했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특성을 감안하면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시장 선호도가 앞으로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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