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개발을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공위성들이 서로 직접 교신해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위성 간 통신(Inter Satellite Link·ISL)’ 기술 개발 경쟁이 뜨겁다. 미국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처럼 각국 우주기업들이 수천 대 위성 규모의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앞다퉈 구축하면서 더 이상 지상국을 통해서는 위성을 직접 제어하기 힘들어져 운행 효율을 위해서는 ISL이 필수적이다. ISL은 통신뿐 아니라 다수의 소형위성이 함께 우주 임무를 수행하는 군집위성 운용과 위성과 지상 간 광통신 구현에도 유용한 기술이다. 이에 스페이스X는 물론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이 선점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개발 노력이 본격화했다.
10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우주항공청은 최근 신규 프로젝트 탐색 연구의 일환으로 ‘차세대 군집위성 간 ISL 검증 플랫폼 구축사업 기획’ 과제에 착수했다. 산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통해 내년 7월까지 관련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한 기획 연구를 수행한다. 선진국처럼 ISL 기술을 확보하고 관련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사업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마침 올해 초소형군집위성 1호 발사를 기점으로 국산 군집위성 체계도 구축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계의 한 관계자는 “ISL은 국내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나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대학 차원에서 주로 연구되고 있는 최신 기술”이라며 “우주청 과제를 통해 정부 사업이 구체화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ISL은 이름 그대로 위성들이 지상국을 통하지 않고 서로 직접 통신하는 기술이다.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급증하는 위성 산업 환경에 대응한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정부 주도로 개발해 발사·운용해온 중대형 위성들은 숫자가 많지 않아 지상국을 통해 제어가 가능했지만 스페이스X만 해도 2500대, 아마존과 원웹 등 경쟁사들도 각자 비슷하게 수천 대 규모의 위성통신망 구축을 추진하며 지구 주변의 위성 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비(非)통신용 위성들도 크기가 더 작아 제작이 쉬운 대신 다수를 양산해 군집으로 운용하는 군집위성이 업계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위성 수가 많아지면 지상국을 통해 일일이 제어하기가 어려워진다. 위성들이 지상과 수백 ㎞ 떨어져 시속 수만 ㎞의 속도로 지구를 공전하며 주파수 간섭과 도플러 효과(신호원의 움직임에 따른 주파수 왜곡 현상) 같은 문제들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ISL은 기존 통신용 전자기파인 전파(RF) 대신 레이저를 이용해 한계를 극복한다. 지상국에 의존하지 않는 데다 서로 멀리 떨어져 빠르게 움직이는 위성들 간의 실시간 통신을 구현하면서도 주파수 간섭을 방지할 수 있다. 기업들이 자국 지상국을 둘 수 없는 해외 위성통신 시장에 진출하는 수단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다만 전파에 비해 에너지와 비용이 많이 들고 더 정밀한 제어가 요구돼 아직 널리 상용화하지는 못한 고난도 기술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용 레이저 통신 단말기를 개발하고 상용화해나가는 추세다.
선두 주자는 스페이스X다.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2021년 초 ISL 기술을 탑재한 첫 스타링크 위성을 발사했다. 위성 발사와 운용에 필요한 지상국을 둘 수 없는 극지방 상공으로 스타링크망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통신 지연 시간도 기존 55ms(밀리초·1000분의 1초)에서 20ms로 단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는 “광케이블을 이용하는 지상 광케이블보다도 40%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지연 시간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며 “2022년 말까지 ISL 탑재 위성을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듬해인 2022년 5월 미국 방산기술 기업 CACI인터내셔널은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ISL 기술을 시연했다고 밝혔다. CACI인터내셔널은 실리콘밸리 기업 SA포토닉스 인수를 통해 관련 기술을 확보, 40여 분간 100㎞ 이상 거리에서 200Gb(기가비트)의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데 성공했다. 위성을 활용한 군사작전에도 ISL이 필수 기술이 됐다는 미 국방부의 판단에 따른 민관 협력이다. CACI인터내셔널은 제조 시설 확대를 통해 ISL 레이저 통신 단말기의 양산 준비에도 들어갔다.
아마존도 스타링크에 대항한 위성통신 사업 ‘프로젝트 카이퍼’의 일환으로 지난해 12월 ISL 기술을 공개했다. 아마존은 “지금까지 비밀로 유지돼온 중요한 시스템 중 하나는 ISL”이라며 “관련 장치를 탑재한 프로토타입(시제품) 위성인 ‘카이퍼샛1’과 ‘카이퍼샛2’는 1시간여 동안 1000㎞ 거리에서 초당 100Gb의 연결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한화시스템이 투자한 영국 원웹도 600여 대의 1세대 위성에 이어 준비 중인 2세대 위성에 ISL 탑재가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 중에는 한화시스템이 학계와 손잡고 대응에 앞장서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지난달 GIST와 공동 개발한 저궤도 위성용 ISL 장비의 첫 중거리 통신 성능 시험에 성공했다. 1.4㎞ 거리에서 초당 1Gb의 통신 성능을 확인했다.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ISL 장비가 성능 시험을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한화시스템의 설명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우주사업 총괄조직 ‘스페이스허브’가 2021년 KAIST와 공동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ISL 프로젝트’에 착수한 상태다. KT의 위성통신 자회사 KT샛은 관련 기술을 가진 독일 리바다스페이스네트웍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국내 서비스를 넘어 ISL 기반 글로벌 위성통신 사업에 협력하기로 했다.
ISL이 단지 위성 간 연결을 넘어 향후 지상 통신도 대체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ISL의 진공을 오가는 레이저가 해저 광케이블 방식보다 40% 가까이 더 빠른 통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이스X의 차세대 통신 서비스 ‘다이렉트투셀’ 위성에도 ISL이 탑재됐다. 다이렉트투셀은 스페이스X가 미국 티모바일, 일본 KDDI 등 글로벌 통신사 7곳과 손잡고 상용화를 추진하는 위성과 스마트폰 간 직접 통신 서비스다. 항우연 관계자는 “ISL이 궁극적으로는 위성 대 위성을 넘어 위성과 지상 간 광통신을 구현해줄 기술로 기대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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