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예상되는 보호무역주의가 한국·일본·대만·베트남 등 제조업 비중이 높은 아시아 국가 전반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데 유독 한국 증시만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환율 불안과 수출 감소, 경기 부진 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삼성전자 등 일부 반도체 종목에 국한됐던 매도세도 증시 전반으로 점차 확산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를 두고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에 상장된 전체 기업 2625곳 가운데 810개사(30.8%)가 전날 단 하루 만에 일제히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939개사 가운데 하락한 종목은 84.2%인 791개사에 달했다. 10개 중 8~9개 종목이 빠졌다는 의미다. 코스닥은 이보다 더 심각해 전체 1686개사 중 1464개(86.8%)가 하락했다. 두 시장을 합쳐도 상승 종목은 고작 306개사에 그쳤다.
이날도 외국인은 기관(-1095억 원)과 함께 국내 증시에서 2344억 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 순매도 상위 종목을 살펴보면 삼성전자(-3497억 원)와 함께 현대차(-421억 원), LIG넥스원(-168억 원), KB금융(-109억 원), KT&G(-105억 원), 하나금융지주(-97억 원) 등 업종을 불문했다. 원화 약세까지 심해지자 외국인이 한국 시장에 등을 돌리고 비중을 본격적으로 낮추기 시작했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최근 증시 불안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촉발했지만 기저에는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 전반에 대한 불신이 터져 나온 결과로 볼 수 있다. 펀더멘털 불안을 당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환율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전날보다 8.8원 오른 1403.5원으로 2022년 11월 7일(1401.2원) 이후 약 2년 만에 1400원을 넘어섰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트레이드로 언제까지 주가가 하락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당장은 환율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며 “환율부터 안정돼야 국내 증시로 유입되는 자금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 실적마저 좋지 않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증권가는 올해 반도체를 중심으로 실적 반등이 나타나 연간 기준 코스피 상장사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0% 증가한 260조 원 수준이 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60조 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3분기마저 실적이 부진한 기업들이 속출하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달 7일까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기업 165개사 중 102개사는 영업이익이 전망치보다 10% 이상 적은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그동안 경제를 지탱했던 수출마저 불안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액은 149억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7.8% 감소했다. 조업 일수 감소를 감안한 일평균 수출액도 21억 3000만 달러로 0.1% 줄었다. 마침 이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성장률을 2.1%에서 2.0%로 하향 조정한 것도 가뜩이나 불안한 저성장 우려에 불을 지폈다. 조상현 현대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거시 지표들을 보면 수출이 감소 전환한 데다 경제성장률이 점차 낮아지고 기업 영업이익 증가율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등 총체적 난국”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나 기저 효과 등을 감안하면 이런 불안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수출 감소나 경기 부진 등의 악재가 금세 나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증시 불안도 장기화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만을 내세우기에는 국내 주식의 매력도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중호 LS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화학·철강·배터리는 중국이 밀어내기를 하고 있고 자동차도 수출이 안 되는 상황이라 면면히 살펴보면 살 만한 종목이 없다”며 “국내 기업들도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 자본 관리 측면에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승현 한국투자신탁운용 ETF컨설팅 담당은 “국내 주요 산업들이 트럼프 2기 산업 정책에 따른 부정적 영향으로 단기적으로 큰 조정을 겪고 있다"며 “보수적으로는 주요 정책이 공개되는 트럼프 임기 초기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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