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에 따라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각종 규제가 도입될 경우 국내 10대 기업 중 4곳이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4일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기업 지배구조 도입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법 개정안 상당수가 외국계 기관투자가에 유리한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규제가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는 3인으로 구성되는 감사위원 중 최소 1인에 대해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감사위원 3명 중 1명은 대주주로부터 독립권을 준다는 취지 아래 마련됐다.
문제는 최근 국회에 현재 1명인 분리선출 적용 감사위원을 2명으로 늘리는 상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감사위원회 과반수가 외부 투기자본에 휘둘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소액주주에게 유리한 집중투표제 역시 기업의 손발을 묶는 제도로 분류된다.
한경협이 두 제도가 도입된 후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이사회 구성 변화를 분석한 결과 외국 국적 자산운용사·사모펀드·국부펀드 등으로 이뤄진 ‘외국기관 연합’이 10대 기업 중 4곳의 이사회 과반을 차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범위를 30대 기업으로 넓히면 8곳의 이사회가 장악 당한다.
한경협은 “이사회가 위협 받는 기업의 자산 비중은 전체 상장사의 13.6%(596조 2000억 원)에 이른다”면서 “국부 유출로 이어져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분석은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기업 중 관련 자료가 있는 196개사에서 공기업·금융회사·리츠를 제외하고 이뤄졌다.
국부 유출 외에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비용이 급증하면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한경협은 지적했다. 단기 이익을 노린 외국기관 연합이 배당 확대 등으로 현금을 소진할 경우 미래 투자에 쓰일 자금이 줄어 장기적으로 기업 밸류가 낮아질 수도 있다.
재계에서는 제 2의 소버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 외국계 투자가들의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소버린 사태는 2003년 SK그룹이 외국계 행동주의펀드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았던 사태를 뜻한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면 국부 유출과 기업 가치 훼손으로 국가 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소수주주에 대한 피해까지 나타날 수 있다”며 “규제에 앞서 각종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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