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의 10조 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에 투자자들이 환호했다. 18일 장중 주가는 최고 7.48% 상승하며 2거래일 연속 급등했다. 여기에 엔비디아 블랙웰 납품 차질로 SK하이닉스(000660)가 주춤하며 삼성전자 주가 상승에 힘을 보탰다. 다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당면한 하락세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한 주가 부양보다 펀더멘털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3200원(5.98%) 오른 5만 6700원에 장을 마쳤다. 이달 14일 4년 5개월 만에 ‘4만 전자’로 추락한 후 2거래일 연속 급등했다. 이날 개인은 삼성전자를 1811억 원어치 사들이며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삼성전자 우선주 역시 6.32% 오르며 9거래일 만에 4만 8000원 선을 회복했다.
아쉬운 대목은 외국인과 기관이 하루 만에 매도 우위로 돌아서 각각 1634억 원, 308억 원어치를 팔아치운 점이다.
삼성전자가 연이틀 상승한 것은 저가 매수세와 더불어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달 15일 삼성전자는 앞으로 1년간 자사주 매입에 총 10조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주가 부양책을 내놓았다. 매입분 중 3조 원은 3개월 내 곧바로 소각하기로 했고 7조 원의 자사주는 활용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의 주주 환원책은 지분을 갖고 있는 보험주의 급등도 유인했다. 삼성전자의 지분을 10%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032830)(8.51%에 삼성화재(000810) 보유 지분 1.49% 포함)이 11.48%, 삼성화재는 10.48% 각각 올랐다.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상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10%를 넘어설 경우 금융 당국의 허가를 받거나 초과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3조 원을 소각할 경우 삼성생명의 초과 지분 매각 금액은 20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만약 삼성전자가 10조 원을 전부 소각한다면 7000억 원 이상으로 불어나게 된다. 삼성생명이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 일부를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을 위해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매수세가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블랙웰이 과열 문제로 납품이 또다시 늦어질 것이라는 소식도 삼성전자 주가 상승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뒤처지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블랙웰 선주문을 완료한 빅테크 기업들이 제품 출시 지연에 대비해 엔비디아의 기존 AI 칩인 ‘호퍼 시리즈’ 주문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4분기부터 호퍼 시리즈에 HBM3E 8단 제품을 공급할 예정인 만큼 SK하이닉스를 추격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이 같은 우려에 SK하이닉스는 6500원(3.65%) 내린 17만 1700원에 장을 마무리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이번 반등이 장기적 상승세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전자는 과거 2015년과 2017년에도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시행했다. 이후 1년간 각각 14.2%, 26.4% 오르며 주가 부양에 성공했지만 이번 자사주 매입은 앞선 사례와 성격이 다르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특히 당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현시점(7.9%)의 2배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이는 반도체 시장 호황에 따른 것으로 HBM,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등에서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은 지금의 삼성전자는 2015년과 2017년 대비 이익 창출 능력이 약화된 상태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자사주 매입은 삼성전자의 바닥이 5만 원이라는 것을 확인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면서도 “HBM 기술 격차 축소 등을 통한 실적 개선이 선행돼야 장기적인 상승이 가능할 것”이라고 짚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