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이 태동한 기흥캠퍼스에서 차세대 연구개발(R&D) 단지 운영을 위한 설비 반입을 시작했다. 반도체 성공 신화의 근원지에서 혁신 기술 개발을 통해 초격차를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18일 경기 용인시 기흥캠퍼스에서 차세대 R&D 단지 ‘NRD-K’의 설비 반입식을 개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을 총괄하는 전영현 부회장 등 DS 부문 주요 경영진과 설비 협력사 대표, 반도체연구소 임직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NRD-K는 2030년까지 20조 원이 투자되는 최첨단 반도체 R&D센터다. 연구소가 들어선 기흥캠퍼스는 삼성전자가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도쿄 선언’ 이후 반도체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한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전 부회장은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근원적 연구부터 제품 양산에 이르기까지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연구소에 반입된 설비를 보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서 뒤처지고 있는 삼성전자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삼성은 고해상도 극자외선(EUV)과 신물질 증착 장비 및 웨이퍼 2장을 이어 붙이는 웨이퍼 본딩 설비 등을 들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장비들은 삼성전자가 미래 반도체 시장에서 초격차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기다. 고해상도 EUV 장비는 네덜란드 장비회사 ASML이 세계에서 독점으로 생산하는 하이-NA EUV 장비로 해석된다. 대당 5000억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장비인데 2㎚(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파운드리 시장에서 라이벌인 TSMC와 경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로 꼽힌다. 웨이퍼 본딩은 최근 업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고급 패키징의 핵심 기술로 일컬어진다. 400단 이상의 차세대 낸드 플래시뿐만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공정에서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NRD-K를 통해 세계적인 소재·부품·장비 회사들과 협력해 반도체 기술의 처음부터 끝까지 연구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출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연구소를 통해 삼성의 쇄신에 속도가 붙을 것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삼성은 1등 기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공지능(AI) 분야의 핵심 메모리인 HBM과 10나노급 6세대(1c) D램에서 라이벌인 SK하이닉스에 뒤처진 상황이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을 내걸고 도전했던 파운드리 사업은 선두인 TSMC와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R&D 사업의 성과도 신통치 못한 상황이다. 삼성은 올 3분기 R&D 분야에 분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인 8조 8700억 원을 투입했지만 시장에서는 투입 대비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냉혹한 평가가 더 많다. 전 부회장도 5월 부임 직후 있었던 임원 회의에서 R&D 전반에 대해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2006년부터 화성캠퍼스에서 기존 R&D 연구소인 ‘NRD’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기능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반도체 연구소가 ‘준양산 체제’에 가까워지면서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실험할 설비가 부족해 수년 앞의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태동한 기흥사업장에 건립된 NRD-K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직접 공사 현장을 점검할 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 회장은 2022년 복권 후 첫 공식 행보로 기흥 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차세대뿐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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