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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늦어질수록 보험료 오르는데…개정안 39개 내고 논의는 '0'

[한 발도 못 뗀 연금 개혁 <상> 정쟁에 파묻힌 연금]

17년전엔 한나라·민노당 연대

지금은 여야 모두 공방전 몰두

3차 개혁 본질, 보험료율 인상

인상폭은 13%로 사실상 합의

"모수개혁이라도 매듭을" 지적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수정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후반부 초점을 양극화 극복에 맞추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교육·노동·연금 등 4대 개혁을 조속히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금개혁은 국가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올 들어서는 정부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정치권은 별다른 논의 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연금개혁이라는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한 방안을 이슈별·분야별로 진단해 본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후 제대로 된 연금개혁 논의를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2년 가까이 가동하고도 합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는데 또다시 6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2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가 개원한 뒤 접수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총 39건이다. 이 중 국민연금제도 개혁과 무관한 내용의 7건을 제외하면 총 32건의 연금개혁 법안은 전혀 심사되지 않은 채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퇴직·개인연금 제도 개선까지 함께 살펴봐야 하는 연금개혁 특성상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인데도 여야가 논의기구를 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주요 정당들이 각자 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한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9월에 △보험료율 13%로 인상 △소득대체율 42% 유지 △세대 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17건에 달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쏟아내고도 통일된 정당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국민의힘 역시 야권에서 집중 공격하고 있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이나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 적용 등에 어떻게 대응할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원내 정당 중 공식 정당안을 발의한 곳은 조국혁신당 한 곳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금개혁을 연내 완수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들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07년에 성사된 2차 연금개혁은 ‘연금 정치’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정부와 원내 정당들이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고 오랜 기간 치열하게 논의한 결과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과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연금개혁 ‘보수·진보 연대’를 결성하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당시 60%던 소득대체율을 20%까지 낮추자고 주장했으나 40%에서 멈추자는 데 동의했다. 대신 보험료율(9%)은 인상하지 않고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합의에 기반한 연금개혁이 작동했다.

전문가들은 3차 연금개혁의 본질은 보험료율 인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혁이 하루 미뤄질 때마다 적자가 885억 원씩 쌓이는 ‘적자 구조’를 탈피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이야기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국민연금제도가 위기에 빠진 근본 원인은 보험료율을 1997년 이후 한 번도 인상하지 못한 데 있다”며 “보험료율 인상 개혁만큼은 이번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차 연금개혁 당시에도 정부는 보험료율을 15.9%까지 올리자고 제안한 바 있다. 논의 과정에서 인상 목표를 13%로 내렸으나 결국 국회 문턱에서 저지됐다. 진보·보수 정당 모두 준조세 성격을 띠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오를 경우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험료율을 올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2차 연금개혁도 미완의 개혁이었다”며 “17년 전 보험료율을 15%대로 올려뒀으면 지금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개혁에 실패하면 5년, 10년 뒤에는 보험료율을 훨씬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보험료율 인상 폭은 사실상 사회적 합의가 끝났으니 모수개혁이라도 먼저 마무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21대 연금특위의 가장 큰 성과는 보험료율을 9%에서 13%까지 올리는 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시민 500명이 참여하는 숙의 토론까지 진행한 결과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상당히 확산됐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복지부가 전국 20~59세 국민연금 가입자 2810명을 대상으로 실사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2%는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반응도 전체의 82.5%에 달했다. 국회 관계자는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자는 데는 사실상 여야의 의견 차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논의의 속도를 높이려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모수개혁을 먼저 처리한 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구조개혁 과제를 검토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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