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경영진을 대폭 교체하는 것은 반도체 업계에서의 '초격차' 위상을 되찾기 한 쇄신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메모리에서 잃어버린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과감한 사업부장 교체를 단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새로운 파운드리사업부장으로 한진만 DS부문 미주총괄(DSA) 부사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한 부사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1989년 삼성에 입사했다. D램 설계에서부터 개발 및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만능형’ 인재로 꼽힌다. 지난 수 년간 미국에서 일하면서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와 쌓은 네트워킹을 토대로, SK하이닉스 등 경쟁사에 뒤처진 HBM 사업과 관련해 북미 ‘빅테크’를 집중 공략할 것으로 해석된다.
한 부사장의 보직 이동을 포함해 올해 삼성 사장단 인사의 최대 관심사는 DS부문이다.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남석우 글로벌제조&인프라총괄 제조담당, 송재혁 반도체연구소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주요 사장 중 상당수가 물러나거나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DS부문 사업부장 전체가 교체되는 파격 인사인 셈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이날 사장단 인사에 관한 의사결정과 함께 주요 사업부 임원들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경영권 승계 관련 2심 재판 최후진술에서 ‘삼성 위기’를 처음으로 직접 언급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인사 시기를 앞당겨 조직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관례적으로 12월 초에 사장단 인사를 실시해왔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11월 말로 사장단 인사를 앞당겨 조기 인사를 실시하게 됐다. 27일 사장단 인사 이후 29일에는 임원인사 및 조직 개편 방안이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의 역할 변화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삼성 내부에서는 항공모함처럼 커진 조직을 이끌기 위해 사업지원 TF의 기능이 확대 재편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톱다운’ 방식 의사결정의 한계가 적지 않다는 비판이 함께 나오고 있어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는 형태로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온다.
한편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가 마무리되면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카드·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 사장단 인사도 조만간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관계사 중 금융계열사 사장단은 대부분 유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융계열사 대부분이 올해 사상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면서다. 삼성생명은 올해 3분기만에 영업이익 2조클럽에 가입하는 등 우수한 실적을 냈다.
삼성물산에서는 4월 경영에 복귀한 이서현 전략기획담당 사장의 역할 확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 사장은 4개 사업부문으로 이뤄진 삼성물산 내에서 현재 특정 사업부를 맡고 있지는 않은 상태다. 범삼성가인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최근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가운데 정 회장보다 두 살 많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할지 여부도 또 다른 관심사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