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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성장이 환율 공포 눌러…내년 초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도

◆0.25%P 내려 2연속 인하…내년 성장률 1.9%로 하향

李 "美 레드스위프發 수출 불안"

환율보다 경기진작에 우선 순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시 수출과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에 기준금리를 깜짝 인하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오르내리고 있지만 경기에 더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특히 금융통화위원들이 추가 금리 인하에 열려 있어 내년 초 금리가 더 내려갈 가능성이 커졌다.

한은 금통위는 28일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현재 연 3.25%인 기준금리를 3.0%로 0.25%포인트 낮췄다. 지난달 금리를 0.25%포인트 내려 3년 2개월 만에 피벗에 나선 후 연속 인하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두 번 연속 조정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 이후 15년여 만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는 안정세를 이어가고 가계부채 리스크도 관리되고 있지만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10월 금통위 당시와 비교해 미국 선거 결과가 ‘레드스위프(공화당의 행정·입법부 장악)’로 간 점과 3분기 수출 증가세가 크게 낮아진 것이 달라졌다”고 인하 배경을 밝혔다.

실제로 한은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2.2%와 1.9%로 0.2%포인트씩 낮췄다. 특히 보호무역 확대에 내년 재화 수출 증가율이 2.9%에서 1.5%로 반 토막 날 것으로 내다봤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의 동력이 떨어지는데 세수 부족으로 인해 재정정책을 펴기는 어려운 상태”라며 “통화정책으로 내수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는 점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하 결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은 부총재를 포함해 2명이 환율 리스크를 들어 동결 의견을 냈다. 한은 부총재가 소수 의견을 내놓은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전격적인 금리 인하에 코스피는 한때 2510선을 넘었다가 전날 대비 소폭 상승한 2504.67에 마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수와 민생이 어려운 가운데 금리 인하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정부도 내수와 민생 회복을 위해 정책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함정’에 갇히지 않도록 선제 조치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 경제성장률을 0.07%포인트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성장률 제고 효과까지 직접 거론했다. 미국과 금리 격차 확대 등으로 외환시장 불안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이달 금리 인하의 효과와 다음 달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지켜본 뒤 내년 초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날 금리 인하는 시장의 예상을 빗나가는 전격적인 조치였다.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시장 자극 가능성 등 금리 인하에 따른 불안 요소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우려 요인은 1400원대로 굳어버린 환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의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2022년 11월 이후 2년 만에 1400원을 넘어섰다. 1400원대의 환율은 과거 금융위기 시절과 비슷한 수준의 고환율인데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 이후에도 환율은 좀체 하락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인플레이션 가능성과 이에 따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 전망 등이 작용하며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안팎에서 거래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낮출 경우 원화 약세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해 이달 기준금리 동결 전망이 우세했던 것이다.

이 총재는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와 관련해 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최근 원화 절하 속도가 다른 통화보다 크게 빠르지 않다”며 “우리와 수출 경쟁 관계인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가 기본적으로 절하 압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환율 변동성을 관리하는 데 외환 보유액이 충분하다”며 “변동성을 관리할 수단도 많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최근 국민연금공단과의 외환 스와프 거래를 1년 연장하기로 했는데 이 같은 외환 관리 방안을 통해 환율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1400원대 환율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서는 “특정 환율 수준보다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본다”며 평가를 유보했다. 외환시장 안팎에서는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원화 약세를 용인하는 신호를 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외환 전문 애널리스트는 “수출 둔화 등으로 최근 원화 약세 흐름이 뚜렷하다”며 “외환 당국의 수장이 환율 수준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면서 1400원대가 용인 가능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환율 우려에도 금리 인하의 추진체 역할을 한 것은 저성장 고착화 우려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성장률은 정부의 기존 전망치(2.6%)를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2.5%), 한국개발연구원(KDI·2.5%) 등보다 낮은 수준이다. 내년 성장률 역시 KDI(2%)와 국제통화기금(2%) 등 주요 기관보다 낮다. 이 총재는 성장률 전망 조정과 관련해 “내수 회복세가 완만한 가운데 수출은 정보기술(IT) 부문 회복세 약화, 주력 업종에서 경쟁 심화 등 구조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증가세가 둔화했다”며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후 커진 교역 환경의 불확실성을 일부 반영해 수출 증가율이 예상보다 상당 폭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또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했는데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내년부터 1%대의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신호를 준 것이다. 이 총재는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어 산업 정책과 구조 개혁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며 “금리 인하는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률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이달 통화정책 완화 효과를 살펴본 뒤 내년 초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도 언급했다. 한은은 다음 달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통위를 개최하지 않아 차기 통화정책은 내년 1월 변경하게 된다. 이달 금통위에서 3개월 후 금리 전망(포워드 가이던스)과 관련해 금통위원 6명 중 3명은 연 3% 수준을 유지, 3명은 3%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 놔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달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향후 3개월 뒤에도 기준금리 3.25%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8월 금리 인하 실기론이 제기되면서 금통위원들이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된 것 같다”며 “한국 경제의 저성장 우려가 커진 반면 물가는 이제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아 통화정책 완화 기조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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