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이뤄지는 양자인터넷 원천 기술 시연은 아직 선진국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양자기술 선점을 위한 ‘퀀텀 코리아’ 전략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신호탄이다. 정부는 장거리 양자인터넷 실증과 빅테크급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한 수천억 원 규모의 대형 연구개발(R&D) 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통해 착수하는 동시에 국가 컨트롤타워 출범과 양자기술산업법 본격 시행을 통해 양자 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본지 8월 23일자 1·5면 참조
3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 초 처음 시연할 얽힘 광자를 활용한 100㎞ 양자암호통신 기술은 내년 착수하는 수천억 원 규모의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고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2032년까지 여러 통신 구간을 이어 장거리 양자인터넷을 구현할 수 있는 시설인 ‘얽힘 정제 양자중계기’를 개발하고 초기 인터넷 상용화를 위한 실증에 나설 계획이다. 양자암호통신은 현재 통신과 달리 신호를 마음껏 증폭할 수 없어 전송 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는 만큼 전국 단위의 장거리 인터넷 구현을 위해서는 양자중계기가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양자인터넷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의 양자 원리인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 덕분에 가능하다. 우선 양자 중첩은 양자 정보 단위인 광자가 0과 1의 정보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현상이다. 0이나 1만 표시할 수 있는 현재 디지털 정보보다 정보를 압축해서 빠르게 전송할 수 있다. 또 양자 중첩 상태는 수신지가 ‘양자키’를 통해 정보를 확인하기 전에 외부 영향을 받으면 무작위로 파괴되기 때문에 해킹과 도청 등 정보 탈취 시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SK텔레콤·KT 등 국내외 기업들이 ‘양자키분배(QKD)’라는 이름으로 상용화한 양자암호통신은 하나의 광자, 즉 단일 광자를 이 같은 양자 중첩 상태로 만들어 보안 성능을 크게 끌어올린 암호 기술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양자통신 위성을 통해 수천 ㎞ 거리의 유·무선 통신을 구현하는 등 성능 고도화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양자 얽힘은 두 광자의 상태가 서로 연동돼 먼 거리에서도 즉각적으로 정보가 전달되는 현상이다. 한 광자가 0의 상태를 갖는다면 다른 하나는 먼 거리에 있어도 자동으로 1의 상태를 갖게 되는 식의 관계에 따른 현상이다. 영어로는 ‘양자 순간 이동(teleportation)’이라 불린다. 이 같은 양자 얽힘 관계를 갖는 광자 쌍, 즉 얽힘 광자를 정보 전달에 응용하면 통신 속도를 더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양자컴퓨터가 처리하는 양자 정보를 별도의 변환 과정 없이 곧바로 전송할 수 있다는 호환성 측면의 장점도 있다. 다만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극저온 환경이 필요하는 등 구현 난도가 높아 아직 선진국에서도 초기 단계의 기술로 평가된다. 올 5월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복잡한 도시 환경 35㎞ 구간에서 이 같은 얽힘 광자 전송에 성공하는 등 기술 고도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첫 대형 양자 R&D인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통해 양자인터넷과 함께 양자컴퓨터·양자센서 등 3대 양자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양자컴퓨터 분야에서는 2032년까지 1000큐비트급 기술 개발에 나선다. 큐비트는 0과 1의 정보를 동시에 갖는 양자 정보 단위로 1000큐비트는 현재 구글·IBM 등 글로벌 빅테크의 기술과 맞먹는 성능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20큐비트의 국산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조만간 클라우드 서비스로 상용화할 예정이며 이달 연세대는 IBM의 127큐비트급 고성능 양자컴퓨터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양자센서 역시 초정밀진단 양자 자기공명영상(MRI) 등 기존 센서 대비 최고 100배 정밀한 성능을 목표로 한다.
정부는 또 국무총리를 포함해 8개 부처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 등 20인 이내로 구성된 양자 정책 컨트롤타워 양자전략위원회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출범한다. 양자종합계획과 양자클러스터 기본·발전계획, 정부 중요 정책의 조정 등을 맡는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물론 국방부와 외교부, 국가정보원도 참여해 국가 보안과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달 시행된 양자기술산업법은 위원회 운영을 포함해 양자종합계획 수립, 연구·산업 허브 구축, 생태계 조성과 인력 육성 등을 위한 정부 지원 규정을 담았다.
정부가 양자 분야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기술 선점을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과기정통부의 ‘첨단바이오·인공지능(AI)·양자 글로벌 R&D 전략지도안’에 따르면 한국의 양자기술 수준은 미국·중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 12개국 중 최하위다. 논문, 특허, 전문가 정성 평가 등을 반영해 매겨진 한국의 점수는 양자컴퓨터 부문 2.3점, 양자통신 부문 2.9점, 양자센싱 부문 2.9점으로 12개국 중 최저였다. 양자컴퓨터 100점과 양자통신 84.8점을 받은 미국, 양자통신 82.5점을 받은 중국 등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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