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가 탄핵 정국으로 번지면서 국가의 역점 사업을 책임진 주요 공기업의 기능도 멈춰 서고 있다. 향후 리더십 교체에 따른 추진 과제 등의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각에서는 향후 정권이 교체될 경우에 책임 추궁을 받지 않도록 추진 근거 등을 수집하고 방어 논리를 세우는 데 더 집중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6일 “연말을 맞아 내년도 사업계획 등을 수립·확정해야 하는 시기지만 정부 예산안의 향방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데다 국가적 비상사태 발생으로 어떤 식이든 결정이 녹록하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정국을 관망하는 게 최선이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공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쥔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모르지는 않는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일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자’면서 공직 사회를 채근하고 기관장들도 비상간부회의를 소집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업무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독려하고 있으나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는 상황이다. 일부 기관장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경거망동을 막고자 불필요한 회식이나 휴가 등에 대한 자제령을 내리자 최 경제부총리가 “정부·공공기관은 물론 민간에서도 계획된 연말 행사를 그대로 진행해주길 부탁한다”며 “이것이 내수 회복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촌극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공공기관 중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역점 사업을 추진해온 곳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더 큰 모습이다. 체코 원전 수주, 신한울 3·4호기 건설 등 원전 르네상스 정책에 앞장서온 한국수력원자력과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불리는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 개발을 맡은 한국석유공사가 대표적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탈원전 정책을 경험했던 한수원 내부에서는 또다시 원전 건설이 중단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체코 현지 언론이 이번 사태로 두코바니 원전 건설에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고 문제 삼자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석유공사 역시 당장 9일 부산항에 도착하는 웨스트카펠라호를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지만 예정대로 최소 5공의 시추공을 뚫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국가철도공단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C노선 사업시행자의 자금 조달 문제까지 겹쳐 실착공 시기를 선뜻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만약에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이 교체된다면 현재 야당이 문제 삼은 사업을 집중적으로 감사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방어 논리를 세우고 근거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벌써 흘러나온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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