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사태에 이어 탄핵 정국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증시가 겹악재를 맞았다. 투자 전문가들은 적어도 윤 대통령의 탄핵 여부에 대한 윤곽이 뚜렷해질 때까지는 관망세를 취할 것을 권했다.
8일 증권가에 따르면 투자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의 디커플링(탈동조화)가 계속되며 윤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는 하방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당선인이 가져올 대외 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고 코스피 기업의 이익 전망도 하향되는 상황에서 정치 리스크까지 떠안게 돼 투자 심리 회복 동력이 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탄핵 사태로 인한 정치 불확실성 자체가 주식시장에 부정적"이라며 "탄핵 가결 시 주식 시장은 낙폭을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지만 지난 7일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며 주식 시장 변동성이 장기화될 모양새다.
이번 주 미국 현지시간으로 11일에는 11월 소비자 물가지수가 발표된다. 시장 참여자들은 17~18일 열릴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하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이달 25bp(1bp=0.01%포인트) 금리 인하 가능성은 71.8%로 점쳐졌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 미국 증시의 강세는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당장의 불확실성 보다는 1기 행정부 당시를 감안해, 경기 부양에 초점을 두며 기업 실적 개선과 증시 상승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연말 쇼핑 시즌을 맞아 성탄절 전후 ‘산타랠리’ 도래 여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 주 마지막 거래일인 6일 코스피 지수는 일주일 전인 지난달 29일 종가 대비 27.75포인트(1.13%) 떨어진 2428.16에 거래를 마쳤다. 이달 3일 외국인 투자가들의 유입으로 종가 기준 2500선까지 회복했던 코스피는 사흘 내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재차 2400대로 미끄러졌다. 특히 3일 밤 윤 대통령이 비상 계엄을 선포하면서 4~5일에는 극심한 변동성 장세가 이어졌다.
지난 주(2~6일) 한 주 동안은 개인이 1조 2319억 원어치를 팔아치우면서 주가를 끌어내렸다. 6일에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탄핵 국면으로 급물살을 타면서 개인은 하루에만 5816억 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도 지난 주 5740억 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지난 달 8일부터 이날까지 이틀(11월 22일, 12월 3일)을 제외하고 19일째 순매도 행렬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3일에는 뉴욕 증시 훈풍을 타고 5645억 원가량 순매수했지만,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 선포 탓에 다시 발걸음을 되돌렸다는 평가다.
계엄 사태의 여파는 코스닥 시장에 더욱 암울하게 드리워졌다. 전날 코스닥 지수는 지난달 29일 종가 대비 16.86포인트(2.49%) 하락한 661.33에 마감했다. 6일에는 정치적 혼란이 극심해지자 장중 한때 644.39까지 떨어져 2020년 5월 4일(635.16) 이후 4년 7개월 만에 장중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 증시와 달리 미국 뉴욕 증시는 이번에도 신고가를 새로 썼다. 4일(현지시간) 기술주의 강세에 힘입어 다우존스30산업평균 지수는 전장보다 308.51포인트(0.69%) 오른 4만 5014.04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 지수가 4만 5000선에서 마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도 역대 최고 기록을 사흘 연속 동반 경신한 데 이어 최고 마감 기록까지 새로 썼다.
중소형 기술 기업들이 견조한 실적을 보인 덕분이었다. 미 소프트웨어 업체 세일즈포스는 4일 3분기 시장 기대를 웃돈 실적을 내고 향후 실적 전망도 상향 조정하면서 10.99% 상승했고 반도체기업 마블 테크널러지도 ‘깜짝 실적’과 실적 전망 상향에 23.19% 급등했다.
경기 낙관론이 강화된 것도 증시에 힘을 보탰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미국의 현 경제 상황에 대해 “놀라운 정도로 좋은 모습”이라고 평가하며 활황에 불붙였다. 그는 연준의 경기동향 보고서(베이지북)도 미 경제 활동이 지난 한 달간 소폭 증가했으며 기업들이 수요 전망에 관해 낙관론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위험 선호 심리가 커지자 비트코인은 장중 10만 달러를 경신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미국 정부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는 조치를 내린 것도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에 호재로 작용했다. 미 상무부는 관보에서 “중국이 차세대 고급 무기 체계와 인공지능, 고성능 컴퓨팅에 사용될 수 있는 선단 반도체의 생산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수출 통제 대상 품목에 특정 HBM 제품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에서 네덜란드와 일본은 면제함에 따라 해당 국가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은 오히려 이익 성장 기대감이 커졌다.
다만 이번 조치에 대해 중국 상무부가 즉각 “경제적 압박이고 비시장적 관행”이라며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혀 무역 갈등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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