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확장현실(XR) 기기를 출시하는 것은 ‘캐시카우’인 스마트폰 사업을 넘은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세계적인 빅테크와 기술 동맹을 맺고 XR 사업에 먼저 뛰어든 애플·메타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을 대비한 자체 생태계를 꾸리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XR 사업 외에도 갤럭시 링 등 새로운 웨어러블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삼성전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상위 모델인 갤럭시 S 시리즈에서 폴더블폰인 갤럭시 폴드·Z플립까지 제품군을 확장하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기기의 성능이 성숙 단계에 이르렀고 교체 주기까지 길어지면서 판매 물량이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물가와 금리 상승으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수요가 좀처럼 증가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올 10월에 개최된 2025년도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스마트폰 시장은 올해 2.5% 성장에 비해 내년에는 1% 미만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적도 있다.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삼성전자가 선택한 돌파구는 XR 기기다. 2015년에 공개했던 가상현실(VR) 기기인 기어 시리즈의 성능을 넘어 증강현실(AR) 기술을 탑재하는 헤드셋 또는 안경 형태의 제품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업계에서는 ‘무한’ 프로젝트를 통해 수년 전부터 제품 개발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XR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라이벌은 애플과 메타다. 애플은 2월 ‘비전 프로’라는 헤드셋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XR 시장 진출을 알렸고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9월 ‘오라이온(Orion)’이라는 AR 안경을 공개하면서 자사의 XR 기술을 뽐냈다.
다만 시장이 만개하지 않은 현재 상황은 모든 XR 기기 제조사들의 위기 요인이다.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비전 프로는 출시 이후 분기당 10만 대도 팔리지 않았고 연간 50만 대도 판매하지 못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업계에서는 △어지럼증 △가격과 무게 △콘텐츠 부족 탓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삼성은 이 문제들을 혁신 기술로 차별화하면서 인공지능(AI) 열풍에도 올라탄다면 충분히 잠재력이 있는 사업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비전 프로의 판매량이 미미한 것은 무게·가격 때문이 아닌 콘텐츠 부족 탓”이라며 “정보기술(IT) 생태계에서는 콘텐츠만 갖춰지면 XR 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라는 합의가 있고 이에 삼성 역시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초기 출시할 XR 기기는 ‘빅테크’와 협력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삼성의 제품에는 퀄컴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칩이 탑재되고 구글의 운영체제(OS)가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삼성이 자체 XR 생태계를 꾸리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의 시스템온칩(SoC) 아키텍처 랩에서 XR 전용 칩을 개발하는 것이 그 예다. 애플·메타 등도 자신들만의 ‘커스텀’ 반도체를 기기에 탑재하고 있는 가운데 XR 시장에서 거대 기업들 간의 치열한 부품 기술 경쟁도 예고되고 있다.
회사는 XR 기기 외에도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를 출시하면서 미래 IT 시장을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갤럭시 링이다. 내년 하반기에는 갤럭시 링 후속 제품을 출시하면서 신규 시장 발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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