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를 능가하며 산업과 안보의 전략자산이 될 양자컴퓨터 기술을 두고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구글과 IBM 등 빅테크 주도로 양자컴퓨터 두뇌인 양자칩 성능을 가파르게 높이며 우위 선점을 꾀하는 한편 중국은 민·관이 힘을 합쳐 고성능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양자의학연구소를 출범시키며 상용화도 서두르고 있다. 한국 역시 인공지능(AI)·바이오와 함께 양자기술을 선점이 필요한 3대 ‘게임체인저’로 정한 만큼 최근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글로벌 경쟁 대응 차질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은 9일(현지 시간) 새로운 양자칩 ‘윌로우’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윌로우는 특정 작업에서 현존 최강의 슈퍼컴퓨터 ‘프론티어’로도 10셉틸리언(10의 24제곱)년이 걸리는 작업을 5분 만에 해낼 수준의 연산 속도를 자랑한다. 구글은 또 윌로우가 양자컴퓨터의 상용화를 가로막는 고질적 난제인 ‘오류정정’ 문제를 30년 만에 처음으로 해결, 큐비트(양자정보처리 단위)를 늘리면서도 ‘임곗값 이하’의 오류율을 달성할 수 있는 첫 양자칩이라고 강조했다.
양자컴퓨터 성능을 높이려면 양자정보처리 단위인 큐비트 수를 늘려야 하지만 동시에 계산 오류도 잦아진다는 모순이 있다.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도 등장했지만 1000번 계산에 1번꼴로 발생하는 잦은 오류를 오류정정을 통해 1조 번의 1번꼴로 줄이지 못하면 상업적 활용은 어렵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윌로우는 큐비트들을 사각형 격자 구조인 ‘표면 코드’로 묶어 서로 오류를 보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이 모순을 풀었다. 큐비트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오류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큐비트를 17개에서 49개, 97개로 늘릴 때마다 오류율이 거의 절반씩 떨어졌다고 구글은 전했다.
IBM도 지난 달 최신 양자칩 ‘퀀텀 헤론’을 공개했다. 2021년 공개해 최근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에 도입된 127큐비트급과 비교해 동일한 연산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기존 112시간에서 2.2시간으로 50배 향상시킨 현존 최고 성능의 제품이라고 회사는 강조했다. IBM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과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등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글로벌 연구기관을 집중 공략 중이다. 엔비디아는 직접 양자컴퓨터를 만들지는 않지만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슈퍼컴퓨터 ‘에오스’를 앞세워 구글과 손잡았다. 실제처럼 양자칩 성능을 떨어뜨리는 노이즈(잡음) 환경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해 성능시험을 지원한다.
구글 윌로우 공개와 같은 날 중국에서는 양자컴퓨터를 의학 연구에 활용하는 자국 내 최초의 연구소 ‘허페이 양자컴퓨팅·데이터 의학연구소’가 출범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연구소는 양자컴퓨터 기업 ‘오리진퀀텀컴퓨팅’과 벙부의대가 공동 설립해 의학 분야의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앞당길 방침이다. 방대하고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한 의료 데이터를 양자컴퓨터로 분석·관리하고 신약 연구 등에도 응용하겠다는 것이다. 오리진퀀텀은 1월 자체 양자컴퓨터 ‘오리진우콩’을 출시해 137개국에 보급했다. 이달 6일 중국과학원과 퀀텀시텍은 504큐비트 양자컴퓨터 ‘톈옌-504’를 출시하며 미국 빅테크와 본격적인 성능 경쟁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가별 양자컴퓨터 기술 수준은 1위 미국을 100점으로 놓으면 중국이 35점으로 2위를 차지하며 추격에 나서는 양상이다. 한국은 2.3점으로 주요국 12개국 중 최하위다. 아직 초기단계 기술인 만큼 지금부터라도 추격에 나서면 승산이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지만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이마저 어려워진 상황이다. 국가 컨트롤타워 ‘양자전략위원회’는 당초 연말 연초로 예정됐던 출범 일정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출범과 연계해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클라우드 서비스로 상용화하는 등 관련 계획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역시 차질이 예상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이번 사태로 과학계도 위기에 놓였다”며 “리더십 재정비와 정책 재검토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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