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태영건설(009410)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 돌입 후 자회사 에코비트 매각에 착수한 태영그룹이 2조 원이 넘는 매각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모두 헌납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태영그룹 지주회사 티와이홀딩스는 전날 에코비트를 국내 사모펀드(PEF) IMM프라이빗에쿼티·IMM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에 매각하는 절차를 완료했다. 총 매각 대금은 2조 700억 원이다.
에코비트는 2021년 10월 태영그룹 계열사 TSK코퍼레이션과 KKR의 산업폐기물 회사 에코솔루션그룹(ESG)이 합병해 출범한 종합 환경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6744억 원, 영업이익은 1100억 원을 내는 등 꾸준히 실적 성장을 이뤄왔다. 국내 매립 시장에서는 1위 사업자다. 그러나 태영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티와이홀딩스가 현금 확보 방안 중 핵심으로 매각을 추진한 것이다.
최근까지 티와이홀딩스와 KKR이 지분을 50%씩 보유해온 데 따라 태영 측은 매각 대금 중 절반인 1조350억 원을 수령할 것이라고 시장에 알려왔다. 그러나 전날 티와이홀딩스는 매각 대금으로 받는 금액이 4260억 원으로 확정됐다고 정정 공시했다. 회사가 지난해 초 KKR로부터 4000억 원을 차입했는데, 해당 원금과 이자 260억 원만 이번 매각 대금에서 상계한 뒤 나머지 돈은 전혀 수령하지 못한 것이다.
티와이홀딩스가 지난해 초 KKR로부터 이 돈을 빌리면서 주주간계약을 맺었던 게 매각 대금을 받지 못한 배경이 됐다. 회사가 재무 위험 등으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하면 KKR이 에코비트의 나머지 지분에 대한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항이 당시 삽입됐던 것이다. 실제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KKR은 이 주주간계약에 따라 해당 지분을 포함 100%를 외부에 매각했다.
다만 티와이홀딩스는 지난 11일 에코비트가 배당한 총 1059억 원을 일시에 수령하며 매각 직전 일부 현금을 확보했다. KKR과 협의를 거쳐 이번 배당금을 모두 양보 받기로 하는 등 소기의 성과는 거뒀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에코비트 매각 과정을 되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태영이 유동성 위기 타개책으로 핵심 자산을 매각했지만 결과적으로 KKR에 돈을 갖다 바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에코비트 출범 후 3년 간 경영을 총괄하며 회사를 키워온 것도 태영그룹이었다. 매각 초기 시장에서 에코비트 몸값을 3조 원대로 바라봤지만 최종 가격이 깎인 것도 KKR에 휘둘려 급하게 처분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는 “주주간계약에 따라 KKR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본다”면서도 “지분 공동 매각 과정에서 KKR에 주도권을 내주며 제 몫을 모두 취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매각 결과로 태영그룹이 지난해부터 KKR에 넘겨줬던 알짜 자회사들의 사례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태영그룹과 윤석민 회장은 지난해 말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100%와 평택싸이로 지분 37.5%를 총 3000억 원을 받고 KKR에 매각한 바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은행권 추가 차입이 쉽지 않던 태영이 당시 위기에서 벗어나는 효과는 있었다”면서도 “KKR에겐 벼랑 끝에 선 태영 상황을 이용해 우량 자회사 경영권을 싼 값에 확보한 뒤 매각하는 좋은 투자 기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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