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내년 초 추경에 대한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내년 설 연휴 전 10조 원대 규모의 추경이 가능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되고 있다.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씨티는 내년 초 10조~15조 원, 내년 하반기 15조~20조 원 규모의 추경이 각각 이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야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추경 수치가 나오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주당이 추진했던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을 고려하면 최소 10조 원 안팎은 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추경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며 그간 워낙 자주 추경을 해왔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추경 금액은 10조 원 내외”라며 “2025년이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에 추경이 거론된다는 것은 추경 시기가 평소보다 빨라질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수요 부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카드는 추경”이라며 “대내외 리스크가 동시에 불거진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추경의 세출 확대 규모는 10조~20조 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내년도 예산 통과 과정에서 삭감된 정부 예산만 4조 1000억 원에 달한다. 민주당이 여야 간 예산안 협상에서 지역화폐 예산으로 요구한 금액만 1조 원이다. 이를 고려하면 약 13조 원 수준의 추경이 가능하다는 예측도 있다. 초유의 삭감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같은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예산 중 누락된 것도 1조 원 규모에 달한다. 앞서 이 대표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것은 정부 재정 역할 축소에 따른 소비 침체”라며 “추경을 신속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시장도 추경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오전 11시 30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0.005%포인트 상승한 연 2.546%를 기록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0.035%포인트 오른 2.711%를 나타내면서 3년물보다 상대적으로 가파른 상승 폭을 보였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연초 추경 편성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국고채 수급에 더 민감한 중장기물 금리가 더 크게 상승(채권 가격 하락)했다고 해석했다.
정부는 “아직 추경을 논의한 바 없고 얘기할 때도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한국은행이 추경에 힘을 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경이 정부 내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한은은 “추경 등 주요 경제정책을 조속히 여야가 합의해 추진함으로써 대외에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모습을 가급적 빨리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추경에 따른 추가 재정 투입이 포퓰리즘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 당국인 기재부 입장에서는 일단 대통령이 탄핵된 상태임을 감안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빚을 내야할 것”이라며 “일단 상반기에는 10조 원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추경을 하더라도 여러 연구를 통해 효과가 미미하다고 밝혀진 지역화폐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적재적소에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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