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미중 무역 경쟁에 속도가 붙은 가운데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자금의 92% 이상이 미국 시장에 쏠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 주식 보유 비중은 사상 최대 수준에 달했던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0.7%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경제·기술 패권 전망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음을 시사했다.
1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전체 해외 주식 보관액 1243억 538만 달러(약 178조 4155억 원·13일 기준) 가운데 92.1%인 1144억 9117만 달러(약 164조 3062억 원)를 미국 주식이 차지했다.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액 규모, 전체 해외 보관액에서 차지하는 비중 모두 예탁원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최대다. 전체 해외 주식 보관액 가운데 미국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88.5%에서 1년 만에 3.6%포인트가 더 올랐다. 올 들어 13일까지 전체 해외 주식 보관액 증가분 474억 5527만 달러(약 68조 1031억 원) 중 97.9%인 464억 6768달러(약 66조 6951억 원)가 미국 주식 투자 계좌에서만 늘었다.
미국 주식이 국내 자금을 대부분 흡수하다 보니 다른 나라의 투자 비중은 크게 감소했다. 일본과 홍콩 주식의 경우 올해 전체 해외 증시 투자 열풍이 강하게 불면서 보관액 절대 수치는 늘었으나 투자 비중은 지난해 말 4.9%, 2.2%에서 3.5%, 1.5%로 각각 줄었다. 중국 주식은 아예 절대액 자체가 지난해 말 10억 2672만 달러(약 1조 4734억 원)에서 8억 5386만 달러(약 1조 2254억 원)로 감소했고 투자 비중도 1.3%에서 0.7%로 반토막이 났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등 첨단 기술을 미국 거대 기술 기업(빅테크)이 진두지휘하는 상황에서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트럼프의 정책마저 부각되면서 투자 쏠림이 가속화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 해외 주식 투자 자금의 이동은 미국과 중국 증시 투자가 모두 증가했던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와도 사뭇 다른 양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1년 말만 해도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해외 국가는 49.3% 비중의 일본이었다. 당시 미국 주식 비중은 17.1%로 이보다 한참 적었다. 이후 홍콩이 36.7% 비중으로 2014년 말 투자 대상국 1위에 올랐다.
미중 갈등이 부각할 조짐을 보인 2015년 말부터는 미국이 그 자리를 꿰찼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처음 집권한 2017년에는 국내 투자자의 미국 증시 투자 비중이 기존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으로 치솟았다.
국내 투자자의 중국 주식 보유 비중 역시 2014년 말 0.3%에서 미중 경쟁 초기인 2015년 말 14.8%로 수직 상승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 1기가 출범한 직후인 2017년 말에는 15.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말 중국 주식 보관액은 29억 2831달러로 현재보다도 20억 달러 이상 더 많았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의 나 홀로 호황 구가, 첨단산업과 기술에서 격차 확대, 중국 성장률 둔화, 한국 증시의 상승 모멘텀 부재 등을 들어 당분간 해외 투자 자금 쏠림 현상은 강화될 것으로 봤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증시가 고물가의 대가로 얻은 장기 호황으로 독주 중이고 트럼프 당선인 취임 이후에도 금리는 예정대로 인하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록기 키움증권 연구원은 “트럼프발(發)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중국에서는 내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지만 부양책을 제외하면 유의미한 소비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부동산 관련 투자도 여전히 부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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