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직전 한국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0.34%포인트 수준이었다. CDS 프리미엄은 국가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해당 국가가 파산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0.2%포인트, 중국이 0.64%포인트가량이다. 하지만 계엄과 탄핵 국면을 맞아 한국의 CDS 프리미엄이 뛰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1차 탄핵 의결 실패 뒤인 6일에는 0.358%포인트까지 오르더니 탄핵 가결 후인 16일에는 0.37%포인트, 20일에는 0.374%포인트까지 상승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CDS처럼 나라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국고채 금리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깜짝 인하했지만 국고채 금리가 0.25%포인트 떨어지기는커녕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한은 부총재의 소수 의견을 무시하면서 단행한 금리 인하의 효과가 한 달도 가지 못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국고채 금리가 하락하고 금융채와 회사채 금리가 연쇄적으로 떨어진다. 이는 대출과 기업의 조달금리 인하의 원인이 돼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낮춘다. 이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같은 메커니즘이 무너진 것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국고채 금리의 역주행 이유로 △수요·공급 △주요국 국채금리 △성장 및 경기 등을 들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는 비상계엄 사태로 내수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내년 초 10조 원 안팎의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30조 원 규모의 ‘슈퍼추경’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세수 상황을 고려하면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이는 국채금리 상승 요인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년에 정부가 발행할 국고채 규모만 197조 원대로 역대급 수준이라는 점이다. 국고채 발행 증가는 금리를 밀어올린다. 내년 1분기에만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가 27조 원이라는 점도 전반적인 채권 시장의 금리 부담을 높이는 요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달 들어 20일까지 3년·10년 국채 선물 순매도 규모는 11조 9000억 원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권금리의 경우 기준금리와의 연동성이 상당히 많이 떨어진 상태이며 앞으로 국채금리가 오르면서 회사채 금리는 더 상승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은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미국보다 금리가 높아야 하는데 지금 안 높으니 자금이 계속 빠져나간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미 국채금리가 연일 고공비행하고 있다. 이달 초 연 4.1%가량이었던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현재 4.5%를 웃돌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미국 국채가 금리까지 높다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특히 이런 상황은 다른 국가의 국채금리를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국채의 경우 상대적 지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한은 부총재를 역임한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국고채 금리가 오른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매파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 반영된 것”이라며 “(연준은) 내년 2회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는데 시장에서는 그것도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어서 지금은 미 국채금리가 (한국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한은과 정부다. 내년 1%대 중후반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정과 통화정책을 적절히 혼합해 사용해야 하는데 이미 1번의 기준금리 인하 카드가 무용지물이 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5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어 물가가 불안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은의 입지는 더 제한돼 있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3%로 내릴 수 있는 여력도 많지 않다. 연준의 경우 최근 금리를 0.25%포인트 낮췄지만 여전히 4.25~4.50%로 한국보다 금리 인하 여력이 1%포인트가량 크다. 영국과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최근 금리를 동결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보편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도 한은 입장에서는 고민거리다.
김 교수는 “체감 물가 수준이 높고 미국처럼 자가 주거비를 포함하면 우리 물가도 3%대 중반일 것”이라며 “지금 쓸 수 있는 것은 이제 재정정책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내년 성장률이 불투명한 부분이 많은데 추경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한은 입장에서는 조기에 금리를 인하해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