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은행이 경기 침체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내년에 42조 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비우량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을 사들이는 특수목적기구(SPV)를 다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SPV는 코로나19 당시 가동했던 시장 안정 프로그램으로 내년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한 안전장치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위해 내년 31조 원 규모의 정책자금도 투입한다.
산은은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5년 경영목표’를 발표했다.
산은은 내년에 시장 안정을 위해 10조 원 규모의 SPV를 재가동할 방침이다. SPV는 A등급 이하 비우량 등급 채권과 CP를 매입하기 위한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처음 도입됐다가 2021년 이후 가동이 중단됐다. 기존 시장 안정 수단인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우량 회사채를 주로 매입하는 것과 달리 저신용등급 기업의 채권을 매입하는 만큼 정부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기업의 자금난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 때 운영했던 산은과 금융권이 참여하는 SPV를 다시 가동하는 것은 그만큼 내년 시장 상황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며 “실제 활용 여부를 떠나 산은을 비롯한 금융권이 기업들의 안전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산은은 이외에도 △채안펀드(20조 원) △회사채·CP 차환 지원(7조 4000억 원) △회사채신속인수제(4조 4000억 원) 등 시장 안정 프로그램도 함께 가동할 계획이다. 산은은 “채권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고 비상시 정부와 유관기관의 협의를 통해 신규 지원 방안 마련 등 시장 안정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산은은 10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 자금 지원 프로그램인 ‘대한민국 리바운드’도 내년부터 본격 가동한다. 내년 지원 규모는 총 31조 2500억 원으로 책정했다. 반도체 부문에 4조 2500억 원을 출자할 계획이며 2차전지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여타 첨단산업 분야에는 28조 2500억 원의 저리 대출을 집행한다. 산은은 이 같은 정책자금 공급을 통해 전 산업에 걸쳐 연간 80조 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더해 연간 34조 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 14만 명의 고용 유발 효과도 예상하고 있다.
산은은 친환경 산업 지원을 위한 ‘미래에너지펀드’도 내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미래에너지펀드는 재생에너지 설비에 투자하기 위해 민관이 공동으로 조성하는 펀드다. 산은과 5대 시중은행이 2030년까지 9조 원을 출자할 계획이다. 산은은 “국책은행인 산은이 최대 출자자로 참여해 시중은행의 펀드 출자분에 대한 위험 가중치를 기존 400%에서 100%로 대폭 낮출 것”이라면서 “시중은행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은은 부실 징후가 보이는 중견기업을 사전에 구조조정할 수 있도록 ‘중견기업 특화 사전적 구조 개선 프로그램’도 신설하기로 했다. 기존 구조 개선 프로그램이 중소기업에 한정돼 있던 것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외에 지역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역 혁신펀드’ 출자 사업도 새로 추진한다. 산은 관계자는 “올해 출범한 남부권투자금융본부에서 남부권 지역 출자 사업을 전담해 지역 벤처 생태계 자생력과 경쟁력 강화를 견인하겠다”면서 “산은이 직접 운용사를 심사해 우수 운용사를 선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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