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기본법 제정에 이어 AI 안전과 관련한 국제 회의를 주도하며 전 세계의 AI 규제 대응 논의 참여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다만 AI기본법이 제효과를 내려면 전력망 확보와 AI 정책 거버넌스 등 전반적 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27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2월 10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파리 AI 행동 정상회의’에서 5개 주요 세션 중 하나인 ‘AI 신뢰(Trust in AI)’ 세션 개최를 주도적으로 맡기로 했다. 한국 측 인사가 회의를 주재하는 식의 방안을 프랑스 측과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 AI 행동 정상회의는 올해 5월 주요국과 빅테크 수장이 모여 국내 개최된 ‘AI 서울 정상회의’의 후속행사다. 한국이 행사 개최에 이어 파리에서도 AI 안전에 관한 글로벌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또 유럽연합(EU)은 AI법 본격 시행에 맞춰 파리에서 ‘행동강령(code of conduct)’을 마련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행동강령은 AI법을 준수하기 위해 전 세계 기업들이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이다. 한국 AI 기업 역시 유럽 수출을 위해서는 이를 따라야 하고 국내 자체 가이드라인 마련이 선제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대응 첫단계로 전날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안(AI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AI기본법은 이용자의 생명과 안전,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AI 기술을 ‘고영향 AI’로 규정하고 AI가 만든 콘텐츠에 워터마크(식별표시)를 넣는 등 개발사의 AI 신뢰성 확보 노력을 의무화하며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사실조사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가짜뉴스, 딥페이크, 개인정보와 저작권 침해 등 AI 부작용에 체계적으로 대응해 국산 AI의 서비스 품질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김명주 AI안전연구소장은 “기업들이 AI를 수출하려면 글로벌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AI기본법과 그에 따른 선제적 규제로 국내에서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해외로 나가는 게 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한 AI 기업 관계자도 “가이드라인 없이 기술 홀로 발전할 수는 없다”며 “경쟁국보다 늦지 않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후속조치가 빠르게 따라오지 않으면 AI기본법만으로는 반쪽짜리 정책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우선 고영향 AI 등 업계 이해관계가 예민한 규정을 하위법령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하위법령 제정 기한은 내년 12월이지만 정부는 6월까지 앞당겨 기업들이 대응할 시간을 주겠다는 방침이다.
또 AI 전력 수요 충족을 위해 필요하지만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 제도 보완도 과제다. 국가AI위원회가 위원장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로 추진동력이 줄어든 상태라는 문제도 있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AI기본법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며 “AI 산업 육성은 민간 투자 유치와 이를 통한 오픈AI 같은 딥테크 창업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52시간제나 세액공제 등 민간 투자를 활성화할 전반적인 제도 정비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과기정통부 산하 AI안전연구소는 AI기본법에 맞춰 EU와 협력해 한국 기업들이 국내 법에 따른 인증만으로도 현지 시장에 AI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도록 상호인증 제도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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