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민관정이 힘을 합쳐 다시 한번 수출 엔진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우리 경제가 코너에 몰릴 때마다 돌파구 역할을 했던 수출이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에도 다시 한번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우라나라 경제사(史)에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슬로건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박정희 정부가 1962년 내놓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만 해도 해외 자본을 유치해 제철·기계·비료 같은 중화학공업을 육성한다는 청사진만 있었을 뿐 수출을 기반으로 한 공업화 계획은 명시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62년 6월 실시한 화폐개혁까지 실패로 돌아가면서 우리 경제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때 깜짝 구원투수로 등장한 게 바로 수출이었다. 당시만 해도 가발·합판·섬유 같은 노동집약형 제품들이 주요 수출품이었지만 이 제품들이 외화를 들여오면서 경제 전반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수출에서 희망을 본 정부가 1964년 환율을 2배로 올리는 조치까지 단행하면서 그해 한국 수출은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수출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밀어 올리는 1등 공신 역할을 한 셈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수출이 있었다. 국내 기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도산하는 환란 속에서도 고환율 수혜를 입은 수출 제조 기업들이 달러를 빨아들이며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가장 빨리 IMF 체제를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우리가 전 세계 ‘우등생 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수출이었다. 실제 주요 위기 때마다 수출이 10% 이상 두 자릿수씩 증가하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2024년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내수가 역성장했지만 수출이 이를 상쇄했다”며 “수출이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최대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2025년은 그 어느 때보다 상황이 더 비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세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국내 정치마저 불확실성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할 산업 정책이나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도 기대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런 위기 속에서 ‘제2의 삼성’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998년 IMF 위기 때 철강·조선 등 중화학 경제에서 반도체·통신 등 신(新)경제로 갈아탄 삼성이 이후 30여 년 동안 한국 경제와 수출을 이끈 것처럼 글로벌 산업의 변화에 올라탈 수 있는 새로운 기업을 키워내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한 대기업의 기획 담당 임원은 “국내 기업들의 투자 현황을 보면 반도체나 자동차 말고는 전부 투자 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각종 신산업 규제, 상법, 중대재해법 등을 풀어서 2030년에는 수출 1조 달러 시대를 연다는 각오로 정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해에도 7000억 달러를 밑돌며 박스권에 갇혀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연간 수출액이 매년 성장할 수 있도록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작동할 수 있는 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24년 깜짝 수출 실적을 기록한 변압기나 라면처럼 수출 품목을 다변화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 10월 누적 기준 변압기와 라면의 수출 금액은 각각 18억 3100만 달러, 12억 24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최대 50% 넘게 증가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북미 시장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수요와 K팝 열풍 등에 발 빠르게 대응한 결과로 수출이 늘었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하락)하면서 현지 투자 비용에 대한 부담이 생겨나고 있다”며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태도 국가 신인도는 물론 국가 브랜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새해에 선박과 바이오헬스, 화장품 등에서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이 같은 품목들에 대한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