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근본적 해법은 음식 중독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구 성과가 차세대 비만 치료제 개발을 위한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1월 수상자로 선정된 최형진 서울대 의과대학 및 뇌인지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뇌에 작용하는 원리를 명확히 규명한 연구 결과를 지난해 6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대표적인 GLP-1 기반 치료제인 ‘삭센다’가 2014년, 효능을 개선한 ‘위고비’가 2021년 시판됐지만 개발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치료 원리를 최 교수 연구팀이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그는 “식욕이 뇌에서 어떻게 조절되는지 뇌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먹는 약을 넘어 유전자 치료제, 전자약 등 음식 중독 자체를 없앨 수 있는 다양한 치료법 개발에 도전 중”이라고 말했다.
GLP-1은 사람이 음식을 먹고 나면 위장 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식사 후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해 사람이 음식 섭취를 중단하도록 이끈다. 위고비 같은 비만 치료제 약물은 GLP-1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다. 임의로 사람의 식욕과 음식 섭취를 줄여 체중 감량을 돕는 것이다. 다만 GLP-1 기반 치료제는 2005년 당뇨병 치료제로 먼저 개발된 후 2014년 비만 치료 효과가 추가로 인정된 것으로 약물이 구체적으로 뇌의 어느 부위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었다. 위고비를 넘어 효능을 더 높이고 부작용을 낮출 차세대 비만 치료제 연구에 필요한 핵심 이론이 최 교수 연구팀을 통해 비로소 정립된 것이다.
연구팀은 빛으로 생체 조직을 자극해 그 기능을 연구하는 광유전학을 활용해 실험 쥐에게서 GLP-1 수용체 분포를 찾아냈다. GLP-1 수용체는 GLP-1와 반응하는 신경이다. 일종의 ‘식욕 억제 버튼’이다. 연구팀은 이 버튼이 구체적으로 뇌 속 ‘등쪽 안쪽 시상하부 신경핵(DMH)’에 많이 분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빛으로 이 버튼을 임의로 활성화하면 쥐가 식사를 즉각 중단해 실제로 식욕이 억제됐음을 확인했다. GLP-1 기반 치료제 투여 시에도 유사한 결과가 관찰됐다. 또 버튼을 효율적으로 자극할 수만 있다면 GLP-1 외 전자약 같은 다른 치료법도 찾아낼 가능성이 생겼다.
위고비에 이어 미국 일라이릴리의 ‘오포글리프론’ 등까지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들의 GLP-1 기반 치료제 개발 경쟁이 본격적으로 열린 가운데 최 교수는 ‘그 너머’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인류가 급격히 비만해진 가장 큰 원인은 음식 중독”이라며 “GLP-1 기반 치료제를 능가하는 보다 근본적인 음식 중독 치료제를 개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치료제는 효과가 일시적이고 투약을 중단하면 요요 현상이 올 수 있으며 평생 먹기에는 약값 부담도 크기 때문에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고비의 경우 근육 감소 같은 부작용도 관찰됐다. 식욕 억제 원리를 알아냈으니 과도한 식욕을 부추기는 더 근본적 원인인 음식 중독을 뇌과학적으로 파헤치겠다는 것이 최 교수의 목표다.
시도되는 방법은 먹는 약뿐 아니라 유전자 치료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같은 디지털 심리 치료 방식의 전자약까지 다양하다. 최 교수 연구팀은 한국전기연구원과 두피 전기 자극을 활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임상 연구를 최근 진행해 일부 효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는 “비만 치료제가 당뇨 환자의 사망률을 20% 감소시키는 효과를 입증했다”며 “비단 비만을 넘어 당뇨, 심뇌혈관 질환 등 다양한 질환 치료를 위해서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류가 음식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문화 정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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