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로 자산 매각에 실패한 가운데 원화 가치 급락 여파로 환 헤지 정산금마저 지급하지 못해 궁지로 내몰리는 부동산 펀드가 속출하고 있다. 환율 불안은 점차 고조되는데 해외 부동산 침체가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손실 확대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금융지주 자회사인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지난해 12월 24일 ‘한국투자룩셈부르크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파생형)’ 펀드가 환 헤지 계약 만기가 종료되면서 지급해야 할 정산 차금 107억 원 중 22억 원만 지급했다고 공시했다. 미정산금 잔액 85억 원은 2026년 7월 1일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연 7% 수준의 연체이자율을 내야 한다.
해당 펀드는 순자산 663억 원으로 딜로이트가 사옥으로 쓰고 있는 룩셈부르크 빌딩에 투자하고 있다. 2023년 하반기부터 지속적으로 자산 매각을 추진했으나 부동산 시장 침체로 어려워지자 원금 회수를 위해 펀드 만기를 2030년까지 5년 연장한 상태다. 한투리얼에셋운용 관계자는 “지난해 5월 수익자 총회 의결에 따라 환 헤지 계약을 체결할 수 없어 환 노출로 전략을 변경할 예정”이라며 “내년 상반기부터 자산 매각을 추진해 미정산 금액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펀드는 2019년 6월 설정 당시 원·유로 환율이 하락할 것을 대비해 SC제일은행과 투자 원금 7023만 5100유로에 대한 선물 환매도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대부분 해외 부동산 펀드들은 한국은행 기준금리(1.50%)가 유럽중앙은행(ECB) 정책금리(0.00%)보다 높았던 만큼 환 헤지 프리미엄 이익을 얻을 수 있어 환 헤지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2020년 팬데믹과 2022년 인플레이션 등을 거치며 한은(3.50%)보다 ECB(4.50%) 금리가 높아지면서 환율이 달라졌다. 펀드 설정 당시 1유로당 1360원이었던 환율은 지난해 12월 30일 1537.85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유로화가 패리티(1달러=1유로)에 근접할 정도로 미국 달러화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으나 원화는 그보다 더 빠르게 절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외국인투자가 이탈 등으로 원화 가치는 급격히 하락했다.
문제는 자산 매각 실패 이후 환 헤지 정산금을 지급하지 못한 펀드 중 전액 손실로 이어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벨기에 정부 기관이 입주한 오피스에 투자한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파생형) 펀드도 6월 환 헤지 계약 정산금 73억 5936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결제 미이행이 발생했는데 최근 선순위 대주의 자산 강제 처분으로 전액 손실이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금융회사가 투자한 해외 부동산 단일 사업장 34조 7000억 원 가운데 2조 6100억 원(7.5%)에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했다. 국내 금융회사의 투자 비중이 높은 오피스 시장을 중심으로 투자 자산 부실화가 확대될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해외 오피스 공실률은 20.1%로 산업시설(6.7%), 아파트(5.8%) 등 다른 자산 대비 높다.
김중원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 상업용 부동산 임대 수익은 2027년에서야 반등 조짐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해외 부동산 시장은 당분간 부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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