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술(IT) 상장기업의 글로벌 매출 점유율이 60%에 육박하는 반면 한국은 6% 수준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한국 IT 기업들의 점유율은 2%에도 못 미쳤다. 글로벌 무한 경쟁 속에 주요국 IT 기업들은 내달리고 있는데 한국은 정치권의 외면 속에 손발이 묶인 채 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경영학회 글로컬신산업혁신생태계 연구팀에서 입수한 ‘산업 지배자들(The Industry Dominators)’ 논문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매출액 기준 글로벌 IT 산업 시장 점유율은 6.1%에 그쳤다. 미국이 59.3%로 가장 점유율이 높았고 중국(11.3%)이 그 뒤를 이었다. 한국은 대만(7.3%)에도 뒤졌다.
시총 점유율로 따지면 한국의 부진은 더 두드러진다.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10일 기준으로 각 국가별 시총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미국이 78.3%로 가장 높았다. 한국은 1.6%에 불과해 중국(5.1%)과 대만(4.3%), 일본(2.3%)보다도 낮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로 외국인투자가가 빠져나가고 코스피가 약세를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 시점에서의 격차는 더 벌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1076개 글로벌 IT 상장기업의 매출과 시총을 토대로 각 국가의 시장 지배력을 분석했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쿠팡·네이버를 비롯해 17개 IT 업체들이 포함됐다.
한국 IT 기업의 상대적 부진은 매출액 대비 시총 비율에서도 드러난다. 연구팀에 따르면 한국 IT 기업들의 시총은 매출액의 1.4배 수준에 불과해 미국(7.2배)과 네덜란드(9.1배)는 물론이고 대만(3.2배)과 중국(2.4배), 일본(2.3배)보다 낮다. 똑같이 연매출이 100억 원을 기록했다고 해도 미국 기업은 72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반면 한국은 140억 원 수준의 몸값을 책정 받는다는 의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다른 첨단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연구팀이 제약업 536개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의 매출 점유율은 0.2%로 57.6%에 달하는 미국과 비교해 크게 모자랐다. 시총 점유율로 봐도 한국은 0.9%에 그쳐 미국(53.9%)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연구팀은 “미국이 혁신 생태계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반면 한국은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이 지난달 5일 기준으로 글로벌 주요 기업 9554개 사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 중 상위 2%(193개사)가 조사 대상 기업들의 전체 시총에서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으로 봐도 상위 2.9%(274개사)가 전체의 절반을 점유했다. 이영달 뉴욕시립대 방문교수는 “소수의 산업 지배자들의 혁신 패권이 그만큼 강력하다”며 “이들이 미국 기업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계의 인식도 같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앞으로는 소수 기업이 산업 생태계와 기술을 독점하는 상황이 더 심화할 것”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의 기민한 의사 결정과 신속한 법안 처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