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일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은 대통령 탄핵과 헌정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 통과 이후 벼랑 끝으로 몰린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대 저성장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복합위기가 몰려오고 있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이라는 한계 탓에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이 엄중한 데 비해 대응책에 알맹이가 빠져 있다며 현상 유지에 급급한 임시 대책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경방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8%로 제시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해 7월 하반기 경방에서 전망한 2.2%보다 0.4%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는 한국개발연구원(2.0%), 한국금융연구원(2.0%), 산업연구원(2.1%) 등 국내 연구기관은 물론 한국은행의 전망치(1.9%)보다 낮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내수 회복 부진과 수출 증가세 둔화로 향후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미국 신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전환,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 등 통상 산업 변화 등을 감안해 올해 성장률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만만치 않다고 진단하면서도 대책은 부실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내수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 18조 원 규모의 가용 재원을 총동원해 경기를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들로는 장기 부진에 빠진 내수를 진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신규 재정 투입 효과가 있다고 밝힌 18조 원 가운데 66%인 12조 원은 대출이나 보증과 같은 정책금융이다. 새로운 재정이 투입되는 것은 6조 원 정도다.
정부는 상반기에 역대 최고 수준의 예산 집행과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 등을 통해 추가 경기 보강 효과를 거두겠다는 했지만 2022년 2분기 이후 10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는 소비의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파격적인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 기재부는 추가경정예산 관련 보도가 잇따르자 “추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시간문제라는 해석이 나온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대학 교수는 “현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확장 재정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제대로 된 통상 대응 전략이 부재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이번 경방에서 ‘통상환경 불확실성 대응’을 4대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하지만 대책들을 보면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외관계장관 간담회를 통해 신정부 출범과 관련 주요 경제 현안에 범정부 합동으로 차질 없이 대비하겠다거나 다각적인 소통 채널을 바탕으로 한미 협력 관계를 심화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미중 경쟁과 보호무역주의 심화에 대한 대응 방안도 기존 대책을 열거한 수준이다. 국내 수출 기업들이 교역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역대 최대 규모인 360조 원의 무역 금융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금액을 5조 원 늘린 것 외에 이전 대책과의 차별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동과 연금 같은 구조 개혁 이슈는 경방에 하나도 담지 못했다. 극단적인 정치 상황에 정치적 합의나 국회 통과가 필요한 사안은 뺀 채 사실상 임시 대책만 백화점식으로 끼워 넣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도 보고 있겠지만 새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대비해 뭘 하고 있다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잘 안 보인다”며 “노동시장 등 구조 개혁은 계속돼야 하는데 그런 정책도 안 보이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연장선에서 이번 대책은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한 사안들이 부양책으로 나왔다. 구체적으로 △상반기 신차 개별소비세 한시 인하 △지방 주택 종부세 특례 확대 △지방 주택 취득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배제 1년 연장 등 상당수 금융·세제 지원 방안이 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추진한다.
올해 경방에서 입법 과제는 22건으로 지난해(12건)보다 늘었지만 탄핵 정국으로 여야가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을 고려하면 국회를 통과하는 법은 지난해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경방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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