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저성장 탓에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고삐를 더 강하게 조일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의 소득은 늘지 않는 상황에서 대출을 더 내주면 빚 부담에 소비 여력이 더 떨어져 내수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국은 올 상반기 기준금리가 추가로 떨어지면 하반기에 대출 수요가 다시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연말로 갈수록 대출 문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올해 가계대출 관리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 한도를 약 70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15조 원가량 낮춰 깐깐하게 관리할 계획이다. 가계대출 증가율을 경상 성장률 이내로 관리하는 게 당국의 대출 관리 대원칙이다. 올해 정부가 예상한 경상 성장률은 3.8%로 지난해(전망치 기준 4.9%)보다 1.1%포인트나 줄면서 한도를 낮춘 것이다.
가계대출 한도 중 상당 몫을 차지하는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상품은 크게 줄일 수 없는 만큼 은행을 비롯한 민간 금융의 대출 문턱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책대출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는 올해 55조 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공급할 계획으로 통상적인 상환 규모를 감안하면 정책대출에 따른 가계대출 증가액은 약 44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민간이 공급할 수 있는 가계대출은 약 26조 원 수준이다. 월별 가계대출 증가분을 평균 2조 원 수준으로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가계대출이 월 평균 4조 원가량 늘어났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더 강도 높은 대출 규제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은 경기 침체와 금리 인하 효과 등을 감안해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대출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올 상반기 한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출 신청은 금리 인하 시차 등을 고려할 때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수 있다. 당국 역시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대출 수요가 몰릴 것으로 보고 ‘상약하강’의 규제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의 한 관계자는 “통상 경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면 대출 수요도 함께 줄어드는 흐름을 보이는 만큼 당국이 상반기 중 대출 규제를 새로 꺼내들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하면 규제 수위를 다시 높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당국은 올 하반기부터 스트레스 총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 시 가산금리를 붙여 한도를 줄이는 제도로 대출 지역 등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당국은 지난해 9월 스트레스 DSR 2단계를 도입하며 수도권(1.2%포인트)과 지방(0.75%포인트) 대출에 매기는 가산금리를 차등했다. 올 7월부터는 지역에 관계없이 1.5%포인트의 금리가 붙는다.
일각에서는 경기 침체 충격을 줄이려면 대출 규제를 과도하게 높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당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자칫 규제를 풀었다가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며 “성장률 이내로 가계대출을 관리하겠다는 원칙이 흔들리면 오히려 시장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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