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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격차가 대한민국의 안보…AI·로봇·양자 액션플랜도 서둘러야

대만, TSMC 필두로 '실리콘 실드'

R&D 세액공제·보조금 과감 지원

韓, 첨단공정 점유율 31→9% 전망

국가책략 관점서 공격적 지원책 필요

CVC 규제완화·포닥 제도 보완도

연합뉴스




2000년 미국 언론인 크레이그 애디슨이 그의 저서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반도체 방패)’를 통해 반도체 산업이 대만의 국가 안보를 지키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TSMC 공장이 파괴된다면 반도체가 들어가는 정보기술(IT) 품목들의 생산 역시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대만 정부도 이를 고려해 반도체 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2023년 ‘대만판 칩스법’을 신설해 연구개발(R&D) 투자액의 최대 25%에 대해 법인세 세액공제를 시행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이 법을 두고 “대만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수준의 정부 지원”이라고 평가했다.

보조금 지급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5월엔 엔비디아와 마이크론의 R&D 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114억 대만달러(약 5100억 원)를 지급했다. 2020년엔 옹스트롬(0.1㎚·100억 분의 1m) 단위 초미세공정 개발을 위해 관련 업체에 총 56억 대만달러(약 2500억 원)의 보조금을 제공한다는 ‘옹스트롬 반도체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반도체가 경제 안보의 핵심 축이라는 점을 고려해 대대적인 인력 양성과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영학회장을 역임한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2일 “다소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시기가 있다고 해도 경쟁력 회복을 통해 반도체 공급망 속에서 견고하게 살아남는 것만이 한국의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선 한국 역시 중요한 반도체 공급처다. 경영학회 글로컬 신산업혁신생태계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반도체 상장기업 중 한국의 매출 점유율은 25%로 미국(46%)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41.1%)와 SK하이닉스(34.4%)는 글로벌 D램 시장에서 75.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이 같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한국의 10㎚ 미만 첨단공정 생산 점유율이 2022년 31%에서 2032년 9%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과 비교했을 때도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위태롭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2023년 ‘실리콘 실드 지수’를 고안해 한국과 대만 반도체 산업의 공정 첨단화, 제품 경쟁력, 시장 지배력, 지속 가능성, 생태계 다양성을 비교했다. 한국은 이 5개 항목에서 모두 대만에 밀렸다. 일례로 반도체 미세 공정 수준을 뜻하는 ‘공정 첨단화’ 점수에서 한국은 0.19로 대만(0.8)보다 크게 뒤졌다. STEPI는 “우리의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가 분업화한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투자 전략 부재와 취약한 기업 생태계로 말미암아 경쟁 우위 상실 우려가 내재돼 있음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한국도 국가책략 관점에서 과감한 반도체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지난해 8월 산업연구원에 의뢰해 작성한 ‘주요 전략 산업의 핵심 역량 강화 방안’ 보고서에서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고 전략산업비상기금을 설치해 공격적인 예산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인재에겐 학비를 면제하고 취업 이후 주택 청약과 소득세 면제같은 특례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물론 정부도 지난 5월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26조 원 규모의 금융·인력·인프라 지원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이 대책에 대해 “중소 팹리스·장비 기업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중핵기업 육성 관점과 상당히 거리감이 있다”고 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중견·대기업에만 지원책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양자컴퓨터를 비롯한 미래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반도체 산업과 마찬가지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한국은 영국·이스라엘·캐나다·독일에 비해 AI에 있어 글로벌 민간 투자를 받을 가능성이 낮다”며 “부족한 민간 투자를 메꿀 대규모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중복된 정책 조정, 글로벌 AI 표준 제정, 국가 AI 가이드라인의 제정을 위한 부처별 협력·조정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고 짚었다.

인재 육성책과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를 연계해 국내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이 신산업 혁신 생태계를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영달 뉴욕시립대 방문교수는 “CVC를 산업혁신전문회사로 확대 개편해 사모투자(PE) 겸업을 허용하고 산업 교육·연구 역할까지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박사후과정과 창업·기술이전·산학협력을 연계한 산업 박사후과정 제도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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