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간 국내 증시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한마디에 울고 웃었습니다. 황 CEO는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10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5’에 참석해 가는 곳마다 굵직한 이슈를 생산해냈는데요. 기조연설에서 로봇과 자율주행차량 등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 ‘코스모스’를 발표한 데 이어 반도체부터 양자컴퓨터까지 다양한 발언을 쏟아냈고 그의 발언에 관련주들은 급등락을 연출했습니다.
국내 기업 중 이른바 ‘젠슨 황’ 효과를 직접적으로 본 곳은 단연 SK그룹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3년째 직접 CES에 참관하며 신기술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가운데 이번 행사에서도 엔비디아와의 끈끈한 동맹을 재확인하며 투심을 자극했습니다. 반면 거침 없이 급등하던 양자컴퓨터 종목들은 때아닌 유탄(?)을 맞기도 했는데요.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CES와 젠슨 황 효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HBM 개발 속도, 엔비디아 요구보다 빨라”
이번 한 주간 SK하이닉스(000660)는 11.85%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005930) 상승률이 1.78%로 코스피지수(3.02%)를 밑돈 것과 대조적입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앞서나간 SK하이닉스의 연초 상승세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활약이 한 몫 하고 있는데요. 최 회장은 지난 8일 CES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만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그동안 SK하이닉스의 개발 속도가 엔비디아의 요구보다 뒤쳐져 있었는데 최근에는 개발 속도가 (엔비디아의) 요구보다 더 빠른 역전 형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올해 HBM 공급 등과 관련해서도 “이미 실무진끼리 정해서 올해 공급량 등은 다 결정됐다”고 자신했고요.
나아가 황 CEO가 기조연설에서 “‘피지컬 AI’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것과 관련 “피지컬 AI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며 향후 추가 협업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 AI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와의 공고한 협력 관계를 재확인한 최 회장의 행보에 투자자들은 환호했습니다. 증권사가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낮춰왔는데 새해 들어 처음으로 목표가 상향이 이뤄졌습니다. 엔비디아의 HBM 밸류체인(가치 사슬)에 합류한 SK하이닉스의 수혜가 당초 예상보다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번 CES에서 황 CEO와의 별다른 연결점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되레 황 CEO가 삼성전자의 HBM에 대해 “성공할 것이라 확신한다”면서도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의구심만 키웠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내내 엔비디아에 곧 공급할 것이라고 설명하다 결국 납품 승인을 따내지 못했는데요. 황 CEO의 이번 발언으로 HBM 사업의 미래가 한층 더 어두워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방금 팔고 왔다” 한마디에 천정 뚫은 SKC(011790)
올해 들어 코스피에서 가장 많이 상승한 종목은 세계 최대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기업 SKC입니다. 2일부터 10일까지 약 50% 가량 급등했는데요. 이 기업의 가파른 상승세 역시 최 회장과 엔비디아 효과 영향이 컸습니다.
유리기판은 AI 반도체 발전에 혁신을 가져다줄 소재로 유리기판을 사용하면 기존 대비 데이터 처리 속도는 40% 빨라지고, 전력 소비와 패키지 두께는 절반 이상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SKC가 지분 70%를 보유한 앱솔릭스는 기술력이 경쟁사 대비 최소 3년 이상 앞서 있으며 세계 최초로 미국에 양산 공장을 준공해 상업화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앱솔릭스는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와 함께 설립한 합작사로 미국 정부로부터 생산 보조금 7500만 달러와 연구개발(R&D) 보조금 1억 달러를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안그래도 연초 들어 유리기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상황에서 최 회장의 발언은 부스터를 달아줬습니다. 그는 지난 8일(현지시간) CES 2025에서 젠슨 황 CEO와의 만남 후 SKC의 유리기판 모형을 들어 올리며 “방금 팔고 왔다”고 발언했는데요. 이에 9일 시장에서는 SKC뿐 아니라 와이씨켐(112290)(19.27%), 기가비스(420770)(10.28%), 필옵틱스(161580)(7.86%) 등 유리기판 관련주들이 일제히 급등했습니다.
시장은 엔비디아와의 협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율주행차든 로봇이든 두뇌와 심장은 엔비디아 칩을 사용하고, 연산은 엔비디아의 AI 개발 플랫폼 ‘쿠다(CUDA)’ 기반의 소프트웨어로 설계되며 데이터들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로 구성된 데이터센터가 처리한다”며 “(테슬라처럼 독자 생태계를 구축한 극소수 기업을 제외한) AI 생태계는 이미 엔비디아에 종속적인 상태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양자컴 시대 멀었다”는 젠슨 황 발언에...시험대 오른 양자컴株
지난해 말 구글이 양자컴퓨터 프로세서 ‘윌로우’를 발표한 이후 증시의 핫테마로 떠오른 양자컴퓨터는 올해 CES에서 새로운 테마로 신설되면서 기대감을 더욱 키웠는데요. 반년새 1000% 이상씩 급등하던 관련주들의 흐름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은 이는 다름 아닌 젠슨 황 엔비디아 CEO였습니다. 그는 지난 7일(현지시간) 월가 분석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양자컴퓨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매우 유용한(useful) 양자컴퓨터에 대해 15년이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초기 단계일 것”이라며 “30년은 아마도 후기 단계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20년을 선택한다면 많은 사람이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유용한 양자컴퓨터가 나오기까지는 20년은 걸릴 수 있다는 의미인 셈이죠.
이에 미국 증시에서 아이온큐(-38.9%), 리게티컴퓨팅(-45.4%), 디웨이브퀀텀(-36.1%), 퀀텀컴퓨팅(-43.3%) 등 관련주들이 줄줄이 급락했습니다. 국내 증시에서도 9일 아이윈플러스(123010)(-20.7%), 한국첨단소재(-10.5%), 아톤(158430)(-7.5%) 등은 추풍낙엽처럼 하락했습니다.
한편 이후 황 CEO의 발언에 대한 반박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앨런 바라츠 디웨이브퀀텀 CEO는 한 방송에서 “마스터카드와 일본 통신 기업 NTT도코모 같은 회사가 디웨이브퀀텀 기술을 유료로 사용하고 있다”며 “양자컴 상용화 시점은 20년이나 30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고 정면 반박했고요. 아이온큐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김정상 듀크대 교수도 10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한인창업자연합(UKF) 2025’ 행사 기조연설에서 “(그의 발언은) 20년이 지나면 엔비디아처럼 시가총액 3조 달러의 양자컴퓨팅 기업이 나온다는 의미”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고성능 컴퓨터에 활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통해 AI칩 시장의 80%를 장악한 엔비디아가 양자컴 상용화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양자컴퓨터가 빠른 데이터처리속도를 무기로 GPU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나 저러나 당분간 양자컴퓨터 관련주들의 변동성은 불가피해보입니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양자컴퓨터의 대표 제품과 서비스가 구체화하기 전까지 관련주 주가는 대형 기술 업체의 실적 발표나 행사에서 발언 등에 따라 급등락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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