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고대역폭메모리(HBM) 회사가 맞춤형 칩인 ‘커스텀 HBM’ 시장이 2027년 이후 활짝 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공지능(AI) 시장이 다변화하고 HBM 사용자들의 스펙 요구가 점차 다양해지면서 두 메모리 회사 모두 고객사에 다양한 선택지를 제안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김인동 삼성전자 상무와 강선국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지난해 말 세계적인 팹리스 회사 ‘마벨’이 미국에서 주최한 애널리스트 행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강 부사장은 “8세대 HBM(HBM5)은 아직 표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서 “2026년 말까지는 6세대 HBM(HBM4) 표준 제품이 주류를 이룰 것이고 2027년부터는 맞춤형 HBM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첨단 패키징·메모리·로직 반도체 기술을 결합한 최첨단 기술이 필요하다”며 “커스텀 HBM 시장이 2029년까지 380억 달러(약 55조 원) 규모로 확장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고 말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서 만든 칩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정보 연산장치 바로 옆에 붙어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존 D램 모듈보다 데이터 이동 속도가 훨씬 빠르고 단일 D램보다 저장 용량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HBM은 최근 인공지능(AI) 시장이 만개하면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세계 AI 반도체 1위인 엔비디아에서 최신 AI용 반도체 제품에 HBM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면서다.
업계에서는 ‘표준’ HBM이 아닌 ‘맞춤형’ HBM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AI 시장이 각종 데이터를 ‘학습’하는 단계에서 이를 다양하게 응용하는 ‘추론’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빅테크’ 회사들도 자신들만의 칩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최근 구글이 엔비디아 공급망에서 벗어나 자체 AI 칩 텐서프로세싱유닛(TPU) 설계를 브로드컴에 맡기는 흐름처럼 HBM도 각자의 조건에 맞춤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윌 추 마벨 수석부사장은 “모든 고객들이 반도체를 자신들의 인프라에 맞추기를 원하면서 커스텀 HBM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 HBM은 여러 개의 D램이 쌓여 있고 워낙 많은 데이터가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조건에서 발생하는 발열 이슈를 최소화할 칩도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런 현상을 인지하고 다양한 형태의 맞춤형 HBM을 고려하고 있다. 적층된 D램 가장 밑에서 정보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베이스 다이의 변형이 가장 눈에 띈다. 고객사 요구에 따라 이 베이스 다이에 기존에 없던 연산장치(ALU)를 탑재해 GPU와 HBM 사이의 데이터 이동을 효율적으로 돕는 방법이 고려되고 있다.
HBM을 연산장치 바로 위에 올리는 이른바 ‘3D HBM’도 각광받고 있는데, 심화하는 발열 현상을 잡기 위해 GPU-HBM-냉각장치로 이어지는 기존 칩 배열을 거꾸로 바꾸는 시도까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올해 역시 HBM의 기술 진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4 상용화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HBM4에서 베이스 다이를 시스템반도체 공정에서 제작하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체 4나노(㎚·10억분의 1m) 파운드리에서 자체 생산에 돌입했고 SK하이닉스는 세계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와 협력해 베이스 다이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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