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전통술을 제조하는 것은 ‘힐링’의 과정이었어요. 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제가 전북 김제에서 경험한 평화를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함지애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16년 전 폐암 진단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김제를 떠나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억척스럽게 섬유 사업을 일군 그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한 그는 귀향을 결정했다. 20여 년만 돌아온 김제는 과거와 다른 곳이었다. 넓은 평야에 펼쳐져 있는 벼와 아름다운 야생화들. 자연을 재료로 빚어내는 전통주가 그에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였다. 암을 극복하기 위해 몸에 좋은 식초를 직접 만들다 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함 대표는 “식초는 발효나 효모의 사용 등 술 빚는 공정과 비슷한 점이 많다”며 “술이 이어주는 인연에 반해 지금은 전통주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로 거듭나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인 이연호 선생에게 기술도 전수 받았다. 2020년 대한민국 명주 대상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함지애 대표가 만드는 술의 장점은 향기에 있다. 그가 술을 빚는 양조장 마당은 봄이 되면 연꽃이 만개한다. 이곳 뿐만 아니라 직접 전라북도의 산과 들 곳곳을 돌아다니며 야생화를 활용하는 것이다. 함 대표는 “약주인 ‘다정’에 들어가는 차꽃은 전북 명산 모악산의 고찰 금산사 인근에서 채취했다”며 “자연에서 갓 따온 신선한 재료로 발효 숙성을 거치면 명품 향수 같은 향기가 꽃술에서 피어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술과 함께 하는 즐거움은 같이 먹는 음식을 고르는 페어링이다. 다만 함 대표는 자신이 만든 꽃술의 향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과하지 않은 가벼운 음식과 함께 마시기를 권했다. 함 대표는 “전통주의 가장 좋은 안주는 ‘풍류’와 ‘운치’라고 생각한다”며 “술을 마신다기 보다 즐긴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술만 마셔도 좋고 과일이나 샐러드 같은 가벼운 안주와 즐길 때 꽃술의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전통주 장인이지만 함 대표는 전통주가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전통주를 넘어서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일본의 주류인 ‘사케’처럼 독자적인 이름이 필요하지 전통주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아쉽다는 설명이다. 함 대표는 “한국의 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기성품 소주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다”며 “전통주라는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MZ 세대를 중심으로 색다른 주류를 찾는 고객들이 늘어 전통주 시장의 미래는 밝은 편이다. 다양한 주종이 있는 와인처럼 한 번 전통주를 마셔본 고객들이 새로운 맛을 찾아 다른 한국의 술을 찾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함 대표는 “우리 땅에서 나고 자라는 무궁무진한 재료들이 있기 때문에 찾아보면 마셔도 마셔도 새로운 술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설을 앞두고 지애의봄향기 전통주 3종 ‘인연’, ‘다정’, ‘순애’를 출시한 롯데백화점의 한호철 와인앤리커팀 바이어도 “‘다양성’과 ‘프리미엄’에 방점을 두고 전국 양조장 30여 곳을 방문해 60종을 시음한 후 엄선한 상품”이라며 “2030 고객들이 주 고객층이 만큼 앞으로도 상품 차별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전통주 매출은 지난해 전년 대비 30% 증가했는데 이 중 20·30대 매출 비중이 약 40%를 차지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전통주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새로운 시장을 키우기 위해 주류 품목내에서 우리술 인기 상품을 지속 발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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