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는 국내 기업 1031곳이 참가했다. 전 세계 참가 기업의 20%를 웃도는 역대 최다 수준이다. 스타트업에 한정해 보면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CES 스타트업관에 참여한 국가별 기업 수는 한국 625곳, 미국 189곳, 프랑스 171곳 등이다. 주관 기관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461개의 혁신상을 줬는데 이 중 210개가 한국 기업 몫이었다. 125개는 국내 벤처·스타트업이 받았다.
이는 얼핏 보면 국내 스타트업 업계가 이룬 성과이지만 이면을 바라보면 하나의 기현상이다. 초창기 기업 전문 조사기관 스타트업 블링크에 따르면 한국 창업 생태계 순위는 세계 20위다. 1·2·3위는 창업 강국으로 잘 알려진 미국·영국·이스라엘이다. CB인사이트는 국내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기업)’ 수를 13곳으로 본다. 미국(690곳)과 중국(162곳)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런데 국내 스타트업은 CES를 매년 석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내 평판 효과와 투자 유치 때문”이라는 말을 전했다. CES 참가·수상 이력이 국내 사업 전개나 투자 유치 과정에서 효과를 내다 보니 CES에 목매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 CES에 참여한 한 기업 대표는 “각종 신기술을 둘러보는 것보다 행사장을 찾은 우리 기업인들에게 사업을 소개하는 효과가 더 크다”며 “정부·대기업·공공기관 고위직이 CES를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이 기업인은 “해외 기업과의 협업 기회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열린 국내 최대 스타트업 행사 ‘컴업 2024’는 예년보다 한산했다고 한다. 세계 주요 행사와 비교해 규모가 작기도 했지만 볼 만한 기술·콘텐츠·인물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국내 주요 기업인이 행사장을 찾았다는 이야기도 없다.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 지자체는 공적 재원을 투입해 국내 기업의 CES 참가를 지원한다. 이미 CES가 많은 기업에 내수를 위한 행사가 됐다면 정부가 이제는 눈을 돌려 국내 창업 행사를 육성할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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