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든 한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아야 3%입니다. 미국 시장과 영어권 시장을 더하면 대체로 30% 이상이고요. 3%의 한국 시장에서 1등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30% 시장에서 5등 안에 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30년 넘게 인공지능(AI)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이경일 솔트룩스(304100)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AI 스타트업 ‘구버’를 5~6년 내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겠다는 구상을 전하면서 “솔트룩스의 경쟁력은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15일 서울 송파구 솔트룩스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이 대표는 글로벌 빅테크들의 각축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지는 AI 분야에서도 기술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밝게 웃었다. AI 에이전트(비서) 서비스 출시 두 달 만에 5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구버는 3월부터 유료로 전환해 본격적인 수익 창출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 AI라는 용어가 낯설던 1994년 AI 관련 기업을 설립하며 30년째 업계를 이끌고 있다. 인하대 공대 4학년이었던 1994년 처음 창업한 그는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다 회사를 매각하고 LG중앙연구소에 입사했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를 거친 뒤 2000년 자연어 처리 기업 ‘시스메타’를 설립했다. 시스메타는 2003년 모비코인터내셔널과 합병한 뒤 지금의 솔트룩스가 됐다. 솔트룩스는 자체 언어 모델인 ‘루시아’를 포함해 자회사인 구버와 플루닛을 통해 AI 에이전트와 생성형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솔트룩스의 목표는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AI·데이터 사이언스 분야 점유율 1위, 최다 지식재산권 보유 등 국내에서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등 빅테크와의 경쟁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고 자금을 계속 쏟아부어야 하는 원천 기술에 투자를 멈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대기업을 비롯한 국내 AI 기업들이 돈이 많이 들고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 등 원천 기술 개발을 포기하고 빅테크 기술을 가져다 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우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트룩스는 매년 매출액의 30% 안팎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고 있다. 2023년에는 전체 매출액(308억 원)의 46.5%에 달하는 143억 원을 R&D 비용으로 사용했다. R&D 비용 중 약 40%는 LLM 개발 등 원천 기술 개발에 쓴다. 이 대표는 “유럽은 자체 원천 기술을 가진 기업이 없다 보니 온라인쇼핑은 아마존, 검색은 구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인스타그램·페이스북처럼 외국 기업의 서비스를 쓸 수밖에 없다”며 “AI 분야에서 원천 기술 개발을 포기하면 한국도 유럽처럼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눈으로 보기에는 수익성이 없어 보이는 곳에 투자하는 것 같지만 5년 이후를 내다본다면 기술 의존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며 “원천 기술 개발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2020년 코스닥에 상장한 솔트룩스는 2023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표는 “앞선 3년간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투자 규모를 의도적으로 늘렸기 때문”이라며 “투자 성과가 나타나고 있어 실적이 꾸준히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솔트룩스의 25년 역사 중 적자를 낸 것은 상장 후 투자 확대 시기를 빼면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밖에 없다”면서 “솔트룩스는 재무 건전성이 좋은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올해 5개년마다 세우고 있는 중장기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할 계획이다. 현재 이 대표와 솔트룩스가 구상하고 있는 핵심 목표는 글로벌 이용자 1억 명, 기업가치 1조 원, 전체 매출 중 글로벌 비중 50% 이상 등이다. 이 대표는 “2020년 상장 때 세운 목표가 2027년까지 이용자 1억 명 달성인데 이는 5억 명 이상의 시장을 겨냥한다는 의미”라며 “이를 달성한다면 1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도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 중 매출의 50% 이상을 해외에서 일으키는 기업이 없는데 그것을 해내는 게 최대 목표”라고 덧붙였다.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솔트룩스의 가장 큰 자산은 인재다. 자회사를 포함해 420명가량인 전체 직원 중 R&D 인력만 300명 이상이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는 AI 분야에서 가장 큰 연구개발 조직일 것”이라며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게 아니라 이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는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면서 “한 달에 최소 20명은 면접을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전도유망한 AI 인재들이 솔트룩스를 찾는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AI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인재 유치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던 경험을 전하면서 “현지 인재들이 구버를 사용해본 뒤 놀랐다고 하더라”면서 “이런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회사라면 같이 성장해보고 싶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빅테크를 비롯한 국내외 AI 기업들의 최대 화두는 수익화다. 막대한 R&D 투자를 하면서 플랫폼·서비스 기반을 마련한 기업들은 장기적인 사업 유지를 위해 본격적으로 수익 모델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AI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 대표 또한 이를 올해 AI 업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지목했다. 그는 “올해의 키워드는 ‘모네타이제이션(monetization·수익 창출)’, 즉 명확하게 돈”이라며 “본격적으로 AI 기업들이 돈을 벌어야 하는 해이자 수익 모델이 검증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돈을 벌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은 기술력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는 “국내에 있는 약 300개의 AI 스타트업 중 절반 이상은 올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덩치가 큰 기업들은 그나마 살아남겠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한 스타트업들은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대표는 서비스 측면으로는 ‘AI 에이전트’에 관심이 쏠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기존의 LLM을 넘어서 거의 모든 산업과 서비스에 AI가 접목되는 것을 의미한다. AI의 사용성이 높아지고 더 많은 곳에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며 “MS·아마존·구글 등이 AI 에이전트 플랫폼을 비즈니스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만큼 수익화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올해 AI 업계의 중요한 키워드로 제도화와 규제를 언급했다. 국내의 경우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보니 다소 관심이 덜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AI 선도 국가들은 안전한 AI 활용과 산업 촉진을 위해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그는 “AI와 관련한 제도화·규제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며 “우리나라도 AI기본법을 제정하고 AI 활용 촉진과 함께 안전한 사용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데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 산업을 키우고 생태계를 확장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e is…
△1971년 서울 △인하대 전자재료공학과 △인하대 대학원 정보통신공학과 석사 △2003년~ 솔트룩스 대표이사 △2021년~ 국가기술표준원산업인공지능표준화포럼 의장 △2022년~ 동국대 AI융합대학 객원교수 △2023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부회장 △2024년~ 대통령 소속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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