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해외 주식뿐 아니라 저평가된 국내 반도체주 등에도 뭉칫돈이 몰리면서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가 고작 한 달여 만에 10조 원 이상 늘어 180조 원 벽을 돌파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올해 ETF 시장 규모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방향, 금리 인하 효과 등과 맞물려 200조 원을 조기에 달성하고 지난해보다 더 크게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ETF 순자산총액은 이달 17일 180조 2036억 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180조 원대에 도달했다. 지난해 12월 11일 처음 170조 원 벽을 넘어선 지 37일 만이다. 이는 ETF 순자산이 10조 원 단위로 증가한 기간 가운데 가장 짧은 기록이기도 하다. ETF 시장은 2023년 6월 29일 처음 100조 원을 돌파한 이후 대체로 2~3개월 단위로 10조 원씩 규모를 늘렸다.
ETF 순자산은 특히 올 들어 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173조 5639억 원이었던 ETF 순자산총액은 올 들어 17일까지 12거래일 동안만 6조 6397억 원이 더 늘었다. 이 기간 전체 ETF 수도 935개에서 943개로 8개가 더 증가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올 초의 경우 ETF의 국내 주식 순자산이 해외 주식보다 더 늘었다는 점이다. ETF의 국내 순자산총액은 지난해 말 106조 6695억 원에서 17일 111조 5818억 원으로 4조 9123억 원 더 증가했다. 이 가운데 국내 주식 순자산만 35조 4767억 원에서 38조 2억 원으로 2조 5235억 원이나 불었다. 지난해 1년간 ETF가 담은 국내 주식 순자산이 3조 원 이상 감소한 점과 비교하면 올 들어서는 추세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실제로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ETF 수익률 상위 종목 리스트는 그간 저평가됐던 국내 상품이 휩쓸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반도체레버리지’가 해당 기간 31.56% 오른 것을 비롯해 ‘TIGER 반도체TOP10레버리지(28.23%)’ ‘UNICORN SK하이닉스밸류체인액티브(22.68%)’ ‘KODEX 2차전지산업레버리지(21.71%)’ ‘HANARO 반도체핵심공정주도주(21.53%)’ ‘PLUS 한화그룹주(21.18%)’ ‘SOL AI반도체소부장(21.08%)’ 등이 단기간에 줄줄이 20% 이상의 수익률을 거뒀다.
이 기간 ETF의 해외 투자 순자산총액은 66조 8943억 원에서 68조 6217억 원으로 1조 7274억 원 늘었다. 이 중 해외 주식 순자산은 43조 1136억 원에서 44조 3074억 원으로 1조 1938억 원 늘어 국내 주식 증가액 규모에는 못 미쳤다.
ETF 시장이 올 들어 파죽지세의 성장 속도를 보이는 것은 기존 미국 투자 상품의 인기가 새해에도 이어지는 가운데 반도체 등 가격이 싼 국내 주식에도 매수세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증시 전문가들은 올해 미국 새 정부 출범, 금리 인하, 인공지능(AI) 수혜 종목 확대 등의 효과가 맞물리면서 올해 ETF 시장 규모가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200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ETF가 간편한 해외 투자 수단으로 다시 각광받으면서 연간 순자산 증가액이 지난해 52조 4967억 원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나 홀로 호황’ 때문에 해당 주식 ETF로 자금이 들어오고 있고 일본·유럽 등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는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한국 ETF의 경우는 저평가 매력이 부각하는 바람에 2023년 초 이후 최대 규모로 외국인이 순매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