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회장 측 우군으로 꼽혀온 현대차와 한화 등이 오는 23일 열리는 고려아연(010130) 임시주주총회에 불참할 가능성이 업계 내 거론되고 있다. 지난 21일 법원이 집중투표제를 활용한 이사 선임 안건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영풍·MBK파트너스의 이사회 과반 확보가 가능해졌고 사실상 경영권 승부도 기울었기 때문이다. 재계 그룹사들 입장에선 앞으로 경영권에 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영풍·MBK와의 협력이 다소 중요해지면서 이번 주총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기 보다 기권하는 모양새가 차라리 나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주요주주인 현대차·한화·LG화학 등은 이번 임시주총 불참 카드를 막판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고려아연 이사회에 사외이사 1명을 파견중인 현대차의 불참 가능성을 업계는 일단 크게 보고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 측 사외이사는 경영권 분쟁 발발 이후 최근 이사회에 이미 여러번 불참했다”며 “한쪽 편을 들기 보다 고려아연 회사 자체와 협력하겠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온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선은 한화그룹에 모아진다. 한화그룹은 계열사 3곳을 통해 현재 고려아연 지분 약 8%를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 우군으로 꼽혀온 그룹사 중 가장 높은 지분율이다. 이번 임시주총 1호 의안인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은 그대로 표결에 부쳐지는데, 한화 측의 표심은 그대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의 표심에 따라 1호 의안의 찬반이 갈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호 의안은 주주들의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되는 '3%룰'이 적용된다. 따라서 해당 안건에 한해 의결권 모수가 기존 2070만 주 이상에서 1000만 주 이상으로 대폭 낮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최 회장 측 의결권 지분율은 기존 20.5%에서 약 33%까지 높아진다. 반면 영풍·MBK 측은 46.7%에서 23% 수준으로 낮아진다. 최 회장 측은 여러명이 지분을 쪼개서 갖고 있지만 영풍·MBK는 이보다 적은 수의 인원들이 굵직하게 지분을 나눠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 한화 측 의결권 지분율은 10.7%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미 집중투표제에 찬성 입장을 나타낸 국민연금 의결권 지분율도 이 안건에 한해 5%대로 올라서고 반대를 결정한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노르웨이 정부연기금 등의 의결권 총합도 이에 못지 않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이에 따라 한화가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1호 의안은 출석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통과되는 특별결의 사안인데, 이미 대다수 주주들이 찬반 의견을 정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재계 그룹사들이 대부분 자사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꺼려하고 있고 한화그룹도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상황 등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많다. 한화가 이번 고려아연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찬성 입장을 내보이기가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분을 각각 5%, 2%가량 보유한 현대차와 LG화학 등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것으로 평가된다. 재계 그룹사들은 고려아연과 앞으로도 사업 협력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데 경영권 승부의 추가 서서히 기울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으로 평가된다.
다만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세간의 분석은 영풍과 MBK측의 일방적인 희망일 수 있다”면서 “최 회장의 이사회 과반 확보는 어려워졌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최 회장 측도 이사들을 꾸준히 선임해가며 일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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