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중국과 함께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민간투자 활성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예산 지원은 무한정 늘리기 힘든 만큼 AI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결국 민간기업 차원의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보다 적극적인 투자 유치와 함께 해외 기업과의 협력 강화도 자본력의 열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22일 영국의 데이터 분석 미디어 토터스인텔리전스가 지난해 9월 발간한 ‘2024 글로벌 AI 인덱스’에 따르면 AI 민간투자 부문에서 한국은 27.7점으로 전 세계 11위에 그쳤다. 미국이 최고점인 100점으로 1위에 올랐고 중국(88.8점), 사우디아라비아(51.2점), 이스라엘(50.9점)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전체 순위에서는 6위로 선전했지만 민간투자 부문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강력한 기술 경쟁력과 풍부한 시장을 앞세운 미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오일 머니’를 갖춘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비교하면 한국의 민간투자 수준은 초라한 수준이다. SK텔레콤과 네이버 등 이동통신·플랫폼 기업들이 AI 분야에서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규모다.
한국의 민간투자 경쟁력이 약한 것은 국내 기업의 투자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적어 투자 자금 유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경우 하이퍼클로바X를 앞세워 글로벌 AI 시장을 확보하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AI 연구개발(R&D)에 투입하기로 한 금액은 3년간 6조 원 수준이다. 국내시장의 눈으로 보면 적잖은 규모지만 글로벌 경쟁사인 오픈AI가 오라클·소프트뱅크와 4년간 투자하기로 한 5000억 달러(718조 원)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국내 비상장 스타트업 중에서는 사피온과 합병해 덩치를 키운 AI 팹리스 기업 리벨리온이 국내 처음으로 기업가치 1조 원을 평가받으며 유니콘 반열에 오른 정도다.
한국이 효율적인 전략과 우수한 인재 등으로 AI 시장 경쟁에서 비교적 우수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경쟁을 유지할 ‘실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전선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정적인 투자 규모가 유지되지 않으면 국내 AI 생태계가 성장하기 어렵고 이는 우수한 인재의 해외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계에서는 민간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해외 투자자와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 적극적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등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지속적인 AI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민간투자를 최소한 지금의 두 배 이상 크게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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