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전 세계가 인공지능(AI) 전쟁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오픈AI·오라클·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로 4년간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를 선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달 열린 ‘AI 행동 정상회의’에서 1090억 유로의 민간투자 유치 계획을 밝히며 미중 패권 구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통적인 과학 강국인 일본도 지난해 정부가 직접 투자한 AI 투자액이 1180억 엔에 이르며 데이터센터 건설 보조금을 최대 50%까지 지원하는 등의 정책으로 맞서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현 시점으로만 보면 미국과 자웅을 다툴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되고 있다. 딥시크로 대표되는 저비용 모델까지 선보이며 패권 경쟁을 더욱 가속화하는 형국이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AI 역량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이 경쟁의 핵심은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확보에 있다. 딥시크와 같은 저비용 모델로 인해 컴퓨팅 자원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짧게 제시됐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여전히 막대한 양의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혁신 기술로 AI 개발 효율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인프라 부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최신 AI 컴퓨팅의 대명사인 엔비디아 ‘H100’ 그래픽처리장치(GPU)의 국내 보유량은 주요 경쟁국에 크게 뒤처진 상황이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 국가AI컴퓨팅센터가 출범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관 합작 특수목적법인(SPC)인 이 센터는 올해부터 시범 서비스를 개시하고 2027년에 개소한다. 이어 2030년까지 1엑사플롭스(EF·1초에 100경 번의 부동소수점 연산) 이상 급의 고성능 GPU 등 컴퓨팅 자원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다. 1엑사플롭스 이상의 컴퓨팅 자원이 국내에 공급되면 유망 AI 스타트업들의 개발 환경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민관 협력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정부 단독 지원의 한계를 넘어 AI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당면 과제도 존재한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한정된 컴퓨팅 자원을 공공·연구 부문과 민간 부문에 어떻게 배분할지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다양한 민간 수요와 국가 연구개발 사업 간 균형을 이루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투명하고 공정한 자원 배분 원칙과 성과 기반의 탄력적 운영 체계 구축이 바람직하다. 민간기업들의 지속적 투자 동력 확보도 과제다. 센터 이용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창출하고 수익 창출 구조를 명확히 설계함으로써 참여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정부는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추경 예산을 통한 매칭 투자로 민간 참여를 독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글로벌 AI 기업들과의 협력 모델 구축 역시 센터의 경쟁력 확보에 핵심적인 요소다.
마지막으로 센터는 단순한 컴퓨팅 자원 제공을 넘어서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AI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한국형 AI 모델 개발 지원과 산업별 특화 AI 솔루션을 위한 전문 컨설팅 제공으로 실질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AI 인재 양성과 스타트업 육성, 글로벌 연구개발(R&D) 네트워크 형성 등 종합적 지원 체계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